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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TOPIA OF
PUZZLE PAINTING
Life is like a puzzle of various relationships and experiences, pieces of knowledge and luck. Nam Bo-kyung discovers our life in a puzzle of countless pieces and solves it with fairytale codes.
삶은 다양한 관계와 경험, 지식과 운의 조각들이
모여 만드는 퍼즐 같습니다.
남보경 작가는 셀 수 없이 많은 조각들로 이루어진
퍼즐에서 우리 삶의 모습을 발견하고,
이를 동화적인 코드로 풀어내고 있습니다.
"여러 욕망의 조각들이 모여 연기적(緣起的)이고,
유기체적(有機體的)으로 연결된 삶의 모습은 마치 퍼즐 같다."
-작가노트 중에서
작가 남보경을 만났습니다.
유토피아_130.5x80.5cm_퍼즐에 석채 및 혼합재료_2021 ⓒ남보경
Chapter 1.
Life is a maze,
and Love is a riddle
남보경 작가의 퍼즐 작업이 시작된 건 대학원 시절입니다. 12살에 미술을 시작했고, 예고와 학부를 거쳐 반평생이 넘도록 그림을 그렸지만, 진지하게 ‘작가’에 대해 생각한 것은 대학교 졸업을 앞둔 때였습니다.
“전공을 4년 배우긴 했는데 자신이 없었어요. 대학교 졸업 작품을 준비하면서, ‘아직 제대로 배우지 못한 것 같다’는 생각이 계속 들더라고요. 저는 재료를 사용하는 데 있어서 항상 갈증이 있었던 것 같거든요. 그림 그리는 것은 계속 해왔으니 어렵지 않게 느껴지는데, 재료는
항상 제대로 쓰고 있는 게 맞나 의구심이 들었어요. 그걸 해결하기 위해 전통 그림을 배워야겠다고 생각했죠. 동양화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으니 불화나 전통 초상화를 배워보면 재료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았어요.”
대학원에 진학해 동양화의 뿌리를 차근차근 되짚어 나가기 시작하자 재료를 이해하게 됐고, 자연스럽게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오랜 고민 끝에 그렇게 작가의 퍼즐 작업이 출발했습니다. “삶은 미로 같고 사랑은 수수께끼 같다”는 유명한 노래 가사처럼, 작가는 퍼즐에서 삶의 모습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정체성_22x30cm_퍼즐에 석채_2021 ⓒ남보경
“퍼즐은 많은 의미를 담을 수 있는 소재예요. 퍼즐을 인간관계에 대한 비유라고 볼 수도 있고, 작은 욕망의 조각들이 모여 구성한 한 사람의 초상이라고 볼 수도 있겠
죠. 다양한 관점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을 느꼈어요.”
처음 작업은 단순히 퍼즐의 모양을 그리는 데에서 시작했습니다. 다양한 시행착오를 겪으며 작업은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했습니다.
“퍼즐이 갖는 입체감이 가장 뚜렷한 특성이라고 생각했어요. 이걸 살릴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 고민하다 퍼즐 모양의 칼을 제작해 두꺼운 합판에 찍어내기도 하고 하고, 시중에 있는 퍼즐판을 써보기도 했죠. 지금은 플라스틱 소재의 포맥스로 직접 퍼즐판을 제작해 사
용합니다.”
어제,-오늘-그리고-내일_60.6x72 ⓒ남보경
Chater 2.
얇게 쌓아 올린
환상 세계
작업 과정에는 동양화를 공부한 작가의 정체성이 짙게 드러납니다. 재료와 기법에서 모두 동양화적인 요소를 찾아볼 수 있는데요.
먼저 퍼즐 패턴이 프린팅된 포맥스 판을 이어붙여 원하는 사이즈를 만들고, 석채가 미끄러지지 않고 고정될 수 있도록 겉을 갈아 냅니다. 바탕 처리를 위해 바르는 교반수를 칠한 후에 먹지를 사용해 외곽선을 그립니다.
채색도 전통 채색의 방법을 그대로 따릅니다. 먹을 번지게 하는 수묵화나 담채화와는 달리, 전통 채색은 아주 얇게 안료를 겹겹이 쌓아나가는데요. 보통 세 번 이상 칠해야 원하는 색과 톤을 얻을 수 있습니다.
멀리 있다고 해서 작아지지 않고, 가까이 있다고 해서 커지지 않는 평면적인 구도와 외곽선도 남보경 작가의 그림에서 찾아볼 수 있는 동양화적 요소 중 하나입니다.
사용되는 재료는 돌을 갈아만든 전통 안료인 석채. 작가는 “재료 자체가 내가 가진 하나의 정체성”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동양화 재료는 제 손에 가장 익고, 머릿속에 있는 이미지를 잘 구현해낼 수 있는 도구예요. 석채는 돌가루이기 때문에 입자의 크기에 따라 빛을 반사하면서 반짝거려요. 그 윤기는 서양화 재료의 기름 같은 윤기와는 좀 다르죠. 또 돌이니까 지속성도 길다는 점도 매력이고요.”
Chapter 3.
욕망의 조각을 그리다
퍼즐을 사용해 그림을 그리지만, 그 이미지는 퍼즐과 관련이 없다는 것도 주목할 만한 부분입니다. 작가는 퍼즐 위에 다양한 욕망을 그리고 있습니다. 작가는 욕망을 무조건 부정하거나 긍정하기보다, ‘어떻게 이 욕망을 사용할 것인지’를 묻고 있습니다.
“욕망은 큰 동력이잖아요. 하지만 과해지면 탐욕이 돼요. 퍼즐이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의 삶이라면, 그 위에 그린 욕망은 살아가는 방식에 대한 이야기예요. 그러니까 저는 삶을 바탕에 두고 어떻게 살 건지에 대한 얘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소우주3_100cm_퍼즐에 석채 및 혼합재료_2022 ⓒ남보경
남보경 작가의 대표 연작인 <소우주>는 지구의 형상을 떠올리며 만든 작업입니다. 해당 작업을 관람할 때 관람객은 마치 우주에 있는 듯,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관찰하게 되는데요. 한 발짝 세상과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과정에서 각자만의 소우주를 구성해 보기를 바라는 작가의 의도가 담겨 있습니다.
멀리서 바라본 작가의 ‘소우주’에는 어릴 적 동화에서 보았던 세계가 펼쳐져 있는듯합니다. 이 외에도 토끼와 과자집, 놀이동산 등 동화의 모티브를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작가는 “욕망과 행복을 너무 직접적으로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다”고 설명했습니다.
“가장 현실적이지 않은 이미지로 현실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었다고 할까. 대비를 주고 싶은 게 가장 컸던 것 같아요. 그리고 제가 동화나 디즈니 애니메이션 같은 것에 정말 환장하거든요. (웃음) 뮤지컬도 좋아하고요. 왜 그런가 생각해 보면 실제 삶에서는 그렇게 극적인 일이 거의 일어나지 않잖아요. (뮤지컬에서) 노래가 절정으로 치달을 때의 극한 감정, 현실에 없는 드라마를 볼 때의 충만해지는 느낌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제 그림에서도 그런 비현실적인 느낌을 받았으면 해서 동화적이고 환상적인 코드를 넣기 시작했어요.”
소우주_96.5cm_퍼즐에 석채 및 혼합재료_2021 ⓒ 남보경
좀 더 자세히 욕망의 흔적을 찾아볼까요. <소우주> 시리즈의 초기작에는 자동차나 가방 등 물질적 욕망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상징이 그대로 드러나 있습니다. 작가는 ‘비싼 차’ 와 ‘더 비싼 차’를 그리면서 현실과 이상의 괴리, 사회의 격차를 표현하고자 했다고 합니다. 작가의 욕망이 변화하면서, 그 변화는 환상 공간에도 고스란히 반영됐습니다.
“어렸을 때 제 욕망은 돈이었던 것 같아요. 재작년 즈음, 건강이 크게 나빠지면서 생각하는 게 많이 바뀌었어요.
아플 때 정말 아무것도 못했거든요. 그러니 엄마와 집 앞 산책하는 것조차도 행복이었다는 걸 깨닫게 되더라고요. 이제 먼 미래까지는 보지 않는 것 같아요. 먹을 수 있고,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소소한 일상이 저의 욕망이 됐어요.”
<소우주>와 같은 세계를 공유하는 <과자집> 연작은 <소우주>와 같은 세계를 공유하는 작업입니다. <소우주>에서 관람객이 남보경 작가가 건설한 환상 공간을 조망했다면, <과자집>에서는 그 세계 안으로 관람객을 초대하고 있습니다.
“저는 결국 그림은 최종적으로 안식과 편안함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림을 보았을 때 따뜻함과 행복을 느껴주신다면 그것으로도 좋아요. 그림의 의도를 알아차려주신다면 더할나위 없이 좋고요.”
누군가는 이 세계가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위태롭게, 누군가는 완전한 행복의 공간으로 느껴질 겁니다.
작가는 묻는 듯합니다.
당신은 이곳에서 어떤 욕망의 조각을 발견했나요?
ARTTAG 변혜령 에디터
다시 못 올것에 대하여_74.7x62.6cm_ 퍼즐에 석채 및 혼합재료_ 2020.
작업 중인 남보경 작가 ⓒ남보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