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미술 #서양화 #회화 #유화 #아크릴 #집 #관계 #사회 #사람 

#art #painting #fineart #oilpainting #acrylic #house #relationship #society #people


THE MESSAGE OF HOPE BY PAINTING HOUSES


A house is a mirror of life. When we look into it, we can see its private inner world as well as its values and culture. In this sense, the houses in my work can be seen as individuals with specific values and personalities. Human beings have a meaning of existence when they are in relationships with others and live together in various forms. I believe that a beautiful society consists of beautiful people and relationships. Based on this idea, I express how we live in different relationships with highly textured matière, ropes, colors, and composition of the house. I want to give strength to the tired and worn-out life caused by relationships when happiness is no longer felt. I want to bring comfort and healing to all those who are lonely and struggling in countless relationships. Dreaming of better relationships, I want my work to reflect the state of our society, which is loving, but sometimes tangled and conflicted.



집은 가장 개인적이고 내밀한 공간이자 태어나 처음 관계 맺기를 배우는 태초의 사회입니다. 이곳에서 우리는 안전함을 느끼고, 때론 취약해지죠.


서유영 작가에게 집이란 개인의 역사와 가치관이 오롯이 담겨있는 곳입니다. 그의 캔버스 위에 줄지어 있는 집들은 각자 다른 역사와 정체성을 지닌 개인을 의미합니다. 다양한 관계의 형태를 집으로 그리는 작가 서유영을 만났습니다.

Milky Way 3, 162.2x130.3cm, Acrylic, Sand, and Collage on Canvas, 2023. ⓒ서유영

Chapter 1.
어떻게 해야 
작가가 될 수 있죠?


작가의 초기작.

꽃이 있는 정물, 22.3x16.5cm, Watercolor on Paper, 2017. ⓒ서유영

#집

삶은 한쪽 문이 닫히면 슬그머니 다른 쪽 문을 열어놓곤 합니다. 생명과학자를 꿈꿨던 서유영 작가가 미술을 시작하게 된 것은 연이은 결혼과 출산 후, 육아로 가득 차 있던 생활에 환기를 얻기 위해서였습니다. 주위의 권유로 집 근처의 미술학원을 찾아갔습니다.

 

“성인 대상의 취미미술 학원이었는데, 선생님이 제도권에서 입시를 한 분이 아니라 흔히 말하는 ‘한국식 미대 입시’를 하는 곳이 아니었어요. 첫날 수업이 아직도 기억나요. ‘이 공간에서 마음에 드는 사물 하나를 아무거나 가져와 그려보세요’라고 하길래 떨떠름하게 ‘못 그려도 되냐’고 물었더니 ‘도대체 못 그리는 게 뭐냐’고 되묻더라고요.(웃음)”

 

작가는 이내 그림 그리는 재미에 푹 빠졌습니다. 수업 시간 내에 마치지 못한 작품은 밤새 완성해 갈 정도로 열성적인 학생이었습니다.

 

“당시 학원 한쪽을 작업 공간이 필요한 작가들이 빌려 사용하고 있었어요. 오며 가며 작업을 보니 ‘나도 할 수 있겠다,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선생님께 작가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었더니, 자기 철학이 담긴 작가 노트와 적어도 10점이 담긴 포트폴리오가 필요하다는 거예요.”

 

무엇을 그릴지 고민하던 그때,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던 것은 ‘집’이었습니다. 작가에게 집은 단순히 먹고 자는 곳, 그 이상의 의미였습니다.


“아이가 어릴 때는 아이의 삶 속 크고 작은 선택을 부모가 내려줘야 하는 경우가 많아요. 무엇을 먹을 것인지, 어떤 유치원을 다닐 것인지, 어떤 책을 읽을 것인지…. 선택 하나하나가 쌓이면서 아이의 가치관과 인성이 형성되는데, 부모가 되어보니 그 책임감이 엄청나더라고요. 이 모든 것들이 이루어지는 집이 정말 중요한 공간이라는 걸 체감했죠.”

아리랑 50, 53.0x45.5cm, Mixed Media on Canvas, 2023. ⓒ서유영

작가는 집의 얼굴을 빌려 너와 나의 이야기를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집’에서 출발한 이야기는 관계에 대한 이야기로 귀결됐습니다.

 

“집에서 시작해 그림을 그리다 보니 결국 사람과 사람의 이야기가 남더라고요. 우리가 나누는 이야기들은 결국 관계에서 일어나는 일인 거예요. 사람과 사이에서, 혹은 사회와 나 사이에서.”

 

그렇게 10점을 채워 포트폴리오를 이곳저곳 뿌렸지만, 답이 없었습니다. 6개월이 지났을까, 기회는 우연히 찾아왔습니다. 한 전시 공간으로부터 예정된 전시가 취소되어 급하게 개인전을 준비할 수 있겠냐는 연락을 받은 것. 그렇게 2주 만에 연 첫 개인전에서 작품 세 점을 판매하며 작가의 삶이 시작됐습니다.


성실하게 작업하다 보니 10점으로 시작한 포트폴리오는 어느새 두꺼워졌습니다. 작가는 하루에 잠을 3~4시간 자며 낮에는 아이들을 돌보고 밤에는 그림을 그렸습니다. 작업량이 늘어날수록 작품을 세상에 선보일 기회도 늘어났습니다.

사색 4, 130.3x162.2cm, Acrylic and Collage on Canvas, 2020. ⓒ서유영

어느덧 7년 차 작가가 된 서유영의 전시 이력 중 눈에 띄는 것은 2021년 임수빈 작가와 함께한 2인전 <미시와 거시>입니다. 두 작가는 작업을 한 공간에 배치하는 데 만족하지 않고 공동 작업을 선보였습니다. 꼬박 1년 동안 캔버스는 서울과 용인을 오가며 완성되어 갔습니다. ‘무엇이든지 허투루 하지 못한다’는 작가의 성격이 엿보이는 부분입니다.

 

“각각 서양화와 동양화에 기반을 두고 있다 보니 사용하는 재료가 다르더라고요. 임 작가의 자개 재료와 제가 사용하는 재료가 섞였을 때 문제가 생기지 않을지 먼저 시험해 봐야 했죠. 시행착오의 과정을 거쳐 작업이 완성됐어요.”

미시와 거시 4, 72.7x60.6cm, Mixed Media on Panel, 2021. ⓒ서유영

Chapter 2.
집의 얼굴


봄에 피는 벚꽃의 색을 사용했다.

봄빛 스며들다 4, 91x91cm, Acrylic, Sand, and Collage on Canvas, 2023. ⓒ서유영

#관계

그간 서유영은 집과 관계라는 큰 주제 아래 다양한 연작을 선보였습니다. 작가는 그 이유를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그의 작업은 이미지가 아닌 메시지에서 출발합니다. 표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명확해지면 그때 이미지를 구상하기 시작합니다.

 

최근 집중하고 있는 그러데이션 연작은 다른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 한 사회 안에서 서로 닮아가는 모습을 색으로 표현한 작품입니다. 작가는 이 과정에서 자연에서 발견한 색을 사용했습니다. 단순히 동물과 식물의 색을 넘어 쨍한 햇살 아래 빛나는 지붕의 색, 창문 밖으로 보이는 빌딩숲의 색을 모두 사용했습니다.


그의 작업에서 보이지 않는 관계나 에너지를 가시화하는 도구 중 하나는 로프입니다. <아리랑> 연작에서 로프는 큰 흐름을 만드는 파도의 이미지로, <INNER SIDE> 연작에서는 마치 신경 다발이나 나무와 같은 모습으로 등장했습니다. 작가는 흔글 작가의 ‘끈’이라는 시에서 영감을 얻어 로프를 사용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끊어지지 않은 끈이라고 해서 

모두가 행복한 관계는 아님을


오히려 끊겨진 끈보다 더 어렵게 

얽히고 꼬여있을 수 있음을


- 흔글, ‘끈’

Not in My Back Yard 2, 72.7x60.6cm, Acrylic, Sand, and Rope on Canvas, 2022. ⓒ서유영

가지각색의 지붕은 모두 다른 모양과 성격으로 존재하는 개인을 나타냅니다. 지붕의 색은 작가가 채색 작업 중 제일 신경을 쓰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고채도의 색을 다양하게 사용하면서도 조화를 이루기 위해 뜸을 들이며 가까이서, 또 멀리서 그림을 확인하기를 반복합니다. 사용하는 색의 개수가 많지만, 미리 조색하지 않고 그때그때 색을 만드는 방법을 택하는데, 이는 그림을 그리는 당시의 감정을 반영하기 위해서입니다.

 

“색으로 그 사람의 가치관을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사람이 다 똑같을 수 없거든요. 너와 내가 성격이 아주 비슷해도 정말 다른 부분이 있어요. 너는 누렇고, 나는 노란 거죠.”


작가의 특징 중 하나인 강한 마티에르에도 작가의 철학이 담겨 있습니다. 캔버스 전체에 강한 마티에르를 주기 위해서는 대여섯 차례 모델링 페이스트를 덧발라야 합니다. 원하는 질감을 위해 종이를 구겨 사용하거나 모래를 섞기도 합니다. 체력과 정성을 요구하는 작업이지만 이 질감을 고집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제 그림에는 삶과 관계의 복잡성에 대한 메시지가 담겨 있어요. 결코 가벼운 메시지가 아닌데, 집의 모양이 단순하다 보니 그리는 게 너무 쉬운 거예요. 그게 너무 모순적으로 느껴졌어요. 그래서 일부러 복잡하게 만든 거죠. 울퉁불퉁한 표면에 반듯하게 집을 그리려면 힘이 들어요. 우리 사회가 쉽지만은 않잖아요. 그 속에서도 바르게 살기 위한 노력을 그리는 행위 안에서도 담고 싶었어요.”

합창 4, 70x90cm, Acrylic, Sand, and Formboard on Panel, 2023. ⓒ서유영

Chapter 3.
공감의 시냅스를 뻗다


시냅스의 모양에서 모티브를 얻은 작품이다.

풀씨 한 알, 141x116.8cm, Acrylic, Rope, and Collage on Canvas, 2020. ⓒ서유영

새롭게 열린 미술이라는 문으로 기꺼이 들어선 서 작가는 지나온 길들이 “하나도 아깝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제 삶의 궤적 하나하나가 누적되어 지금에 반영이 되었다고 느껴요. 실패와 상처의 경험들까지도요. 그래서 그 모든 과정이 하나도 헛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요.”


미술과 접점이 없어 보이는 과학도에서 화가로, 전혀 알지 못하는 길을 걷는 것이 두렵지 않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고민이 전혀 없었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저는 주류에 속하지 않는 상황이 익숙한 사람이었어요. 학부는 과학교육과를 졸업하고 대학원은 자연대로 진학했죠. 사범대 학생이 자연대에 온 것을 탐탁지 않아 하는 시선도 있었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았어요. 나만 잘하면 되지! (웃음) 작가가 될 때도 마찬가지였어요.

 

또 우리는 보통 ‘과학’ 하면 암기 위주의 고등학교 교과 과목을 생각하는데, 실제 연구는 그것과 거리가 멀어요. 연구는 팩트 하나를 찾기 위해 이론을 세우고 실험을 설계해서 그 팩트를 찾아 나가는 과정이에요. 마치 빈 캔버스에 어떻게 내 철학을 담아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까 고민하듯이요. 그 생각의 구조가 아주 비슷하죠.”

우리는 새로운 강을 건너고 있다 6, 72.7x90.9cm, Acrylic, Sand, and Collage on Canvas, 2022. ⓒ서유영

이제 서유영의 작업 세계는 너와 나의 이야기를 넘어 사회의 이야기로 확대되고 있습니다. 팬데믹 이후 선보인 <우리는 지금 새로운 강을 건너고 있다>에서는 삼각형 지붕 외에도 사다리꼴 모양의 지붕을 등장시키며 모양에서도 변화를 꾀했습니다.

 

그림을 그리며 ‘관계’에 대해 곱씹어 보게 되었다는 작가는 이제 공감의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세포와 세포는 서로 떨어져 있지만, 그 사이에서 신호를 전달해 주는 신경전달물질을 통해 소통하거든요. 그 모습이 사람과 닮았어요. 사람도 서로 붙어있지는 않지만, 관계를 맺고 자기의 뜻을 전달할 수 있죠.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간격을 이해하고 다름을 인정하기 위한 ‘신경전달물질’은 공감이라고 생각해요.”

 

캔버스를 가득 메운 집 하나하나에 희망이, 공감이 숨어있는 듯합니다.





ARTTAG 변혜령 에디터


#현대미술 #서양화 #회화 #유화 #아크릴 #집 #관계 #사회 #사람 

#art #painting #fineart #oilpainting #acrylic #house #relationship #society #people


THE MESSAGE OF HOPE BY PAINTING HOUSES


A house is a mirror of life. When we look into it, we can see its private inner world as well as its values and culture. In this sense, the houses in my work can be seen as individuals with specific values and personalities. Human beings have a meaning of existence when they are in relationships with others and live together in various forms. I believe that a beautiful society consists of beautiful people and relationships. Based on this idea, I express how we live in different relationships with highly textured matière, ropes, colors, and composition of the house. I want to give strength to the tired and worn-out life caused by relationships when happiness is no longer felt. I want to bring comfort and healing to all those who are lonely and struggling in countless relationships. Dreaming of better relationships, I want my work to reflect the state of our society, which is loving, but sometimes tangled and conflicted.


집은 가장 개인적이고 내밀한 공간이자 태어나 처음 관계 맺기를 배우는 태초의 사회입니다. 이곳에서 우리는 안전함을 느끼고, 때론 취약해지죠.

서유영 작가에게 집이란 개인의 역사와 가치관이 오롯이 담겨있는 곳입니다. 그의 캔버스 위에 줄지어 있는 집들은 각자 다른 역사와 정체성을 지닌 개인을 의미합니다.

다양한 관계의 형태를 집으로 그리는 작가 서유영을 만났습니다.

Milky Way 3, 162.2x130.3cm, Acrylic, Sand, and Collage on Canvas, 2023. ⓒ서유영

작가의 초기작.

꽃이 있는 정물, 22.3x16.5cm, Watercolor on Paper, 2017. ⓒ서유영

아리랑 50, 53.0x45.5cm, Mixed Media on Canvas, 2023. ⓒ서유영

사색 4, 130.3x162.2cm, Acrylic and Collage on Canvas, 2020. ⓒ서유영

Chapter 1.
어떻게 해야 
작가가 될 수 있죠?


#집

삶은 한쪽 문이 닫히면 슬그머니 다른 쪽 문을 열어놓곤 합니다. 생명과학자를 꿈꿨던 서유영 작가가 미술을 시작하게 된 것은 연이은 결혼과 출산 후, 육아로 가득 차 있던 생활에 환기를 얻기 위해서였습니다. 주위의 권유로 집 근처의 미술학원을 찾아갔습니다.

 

“성인 대상의 취미미술 학원이었는데, 선생님이 제도권에서 입시를 한 분이 아니라 흔히 말하는 ‘한국식 미대 입시’를 하는 곳이 아니었어요. 첫날 수업이 아직도 기억나요. ‘이 공간에서 마음에 드는 사물 하나를 아무거나 가져와 그려보세요’라고 하길래 떨떠름하게 ‘못 그려도 되냐’고 물었더니 ‘도대체 못 그리는 게 뭐냐’고 되묻더라고요.(웃음)”

 

작가는 이내 그림 그리는 재미에 푹 빠졌습니다. 수업 시간 내에 마치지 못한 작품은 밤새 완성해 갈 정도로 열성적인 학생이었습니다.

 

“당시 학원 한쪽을 작업 공간이 필요한 작가들이 빌려 사용하고 있었어요. 오며 가며 작업을 보니 ‘나도 할 수 있겠다,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선생님께 작가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었더니, 자기 철학이 담긴 작가 노트와 적어도 10점이 담긴 포트폴리오가 필요하다는 거예요.”

 

무엇을 그릴지 고민하던 그때,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던 것은 ‘집’이었습니다. 작가에게 집은 단순히 먹고 자는 곳, 그 이상의 의미였습니다.


“아이가 어릴 때는 아이의 삶 속 크고 작은 선택을 부모가 내려줘야 하는 경우가 많아요. 무엇을 먹을 것인지, 어떤 유치원을 다닐 것인지, 어떤 책을 읽을 것인지…. 선택 하나하나가 쌓이면서 아이의 가치관과 인성이 형성되는데, 부모가 되어보니 그 책임감이 엄청나더라고요. 이 모든 것들이 이루어지는 집이 정말 중요한 공간이라는 걸 체감했죠.”

 

작가는 집의 얼굴을 빌려 너와 나의 이야기를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집’에서 출발한 이야기는 관계에 대한 이야기로 귀결됐습니다.

 

“집에서 시작해 그림을 그리다 보니 결국 사람과 사람의 이야기가 남더라고요. 우리가 나누는 이야기들은 결국 관계에서 일어나는 일인 거예요. 사람과 사이에서, 혹은 사회와 나 사이에서.”

 

그렇게 10점을 채워 포트폴리오를 이곳저곳 뿌렸지만, 답이 없었습니다. 6개월이 지났을까, 기회는 우연히 찾아왔습니다. 한 전시 공간으로부터 예정된 전시가 취소되어 급하게 개인전을 준비할 수 있겠냐는 연락을 받은 것. 그렇게 2주 만에 연 첫 개인전에서 작품 세 점을 판매하며 작가의 삶이 시작됐습니다.


성실하게 작업하다 보니 10점으로 시작한 포트폴리오는 어느새 두꺼워졌습니다. 작가는 하루에 잠을 3~4시간 자며 낮에는 아이들을 돌보고 밤에는 그림을 그렸습니다. 작업량이 늘어날수록 작품을 세상에 선보일 기회도 늘어났습니다.

 

어느덧 7년 차 작가가 된 서유영의 전시 이력 중 눈에 띄는 것은 2021년 임수빈 작가와 함께한 2인전 <미시와 거시>입니다. 두 작가는 작업을 한 공간에 배치하는 데 만족하지 않고 공동 작업을 선보였습니다. 꼬박 1년 동안 캔버스는 서울과 용인을 오가며 완성되어 갔습니다. ‘무엇이든지 허투루 하지 못한다’는 작가의 성격이 엿보이는 부분입니다.

 

“각각 서양화와 동양화에 기반을 두고 있다 보니 사용하는 재료가 다르더라고요. 임 작가의 자개 재료와 제가 사용하는 재료가 섞였을 때 문제가 생기지 않을지 먼저 시험해 봐야 했죠. 시행착오의 과정을 거쳐 작업이 완성됐어요.”


미시와 거시 4, 72.7x60.6cm, Mixed Media on Panel, 2021. ⓒ서유영

봄에 피는 벚꽃의 색을 사용했다.

봄빛 스며들다 4, 91x91cm, Acrylic, Sand, and Collage on Canvas, 2023. ⓒ서유영

Not in My Back Yard 2, 72.7x60.6cm, Acrylic, Sand, and Rope on Canvas, 2022. ⓒ서유영

Chapter 2.
집의 얼굴


#관계

그간 서유영은 집과 관계라는 큰 주제 아래 다양한 연작을 선보였습니다. 작가는 그 이유를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그의 작업은 이미지가 아닌 메시지에서 출발합니다. 표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명확해지면 그때 이미지를 구상하기 시작합니다.

 

최근 집중하고 있는 그러데이션 연작은 다른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 한 사회 안에서 서로 닮아가는 모습을 색으로 표현한 작품입니다. 작가는 이 과정에서 자연에서 발견한 색을 사용했습니다. 단순히 동물과 식물의 색을 넘어 쨍한 햇살 아래 빛나는 지붕의 색, 창문 밖으로 보이는 빌딩숲의 색을 모두 사용했습니다.


그의 작업에서 보이지 않는 관계나 에너지를 가시화하는 도구 중 하나는 로프입니다. <아리랑> 연작에서 로프는 큰 흐름을 만드는 파도의 이미지로, <INNER SIDE> 연작에서는 마치 신경 다발이나 나무와 같은 모습으로 등장했습니다. 작가는 흔글 작가의 ‘끈’이라는 시에서 영감을 얻어 로프를 사용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끊어지지 않은 끈이라고 해서 모두가 행복한 관계는 아님을

오히려 끊겨진 끈보다 더 어렵게 얽히고 꼬여있을 수 있음을

- 흔글, ‘끈’

 

가지각색의 지붕은 모두 다른 모양과 성격으로 존재하는 개인을 나타냅니다. 지붕의 색은 작가가 채색 작업 중 제일 신경을 쓰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고채도의 색을 다양하게 사용하면서도 조화를 이루기 위해 뜸을 들이며 가까이서, 또 멀리서 그림을 확인하기를 반복합니다. 사용하는 색의 개수가 많지만, 미리 조색하지 않고 그때그때 색을 만드는 방법을 택하는데, 이는 그림을 그리는 당시의 감정을 반영하기 위해서입니다.

 

“색으로 그 사람의 가치관을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사람이 다 똑같을 수 없거든요. 너와 내가 성격이 아주 비슷해도 정말 다른 부분이 있어요. 너는 누렇고, 나는 노란 거죠.”


작가의 특징 중 하나인 강한 마티에르에도 그의 철학이 담겨 있습니다. 캔버스 전체에 강한 마티에르를 주기 위해서는 대여섯 차례 모델링 페이스트를 덧발라야 합니다. 원하는 질감을 위해 종이를 구겨 사용하거나 모래를 섞기도 합니다. 체력과 정성을 요구하는 작업이지만 이 질감을 고집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제 그림에는 삶과 관계의 복잡성에 대한 메시지가 담겨 있어요. 결코 가벼운 메시지가 아닌데, 집의 모양이 단순하다 보니 그리는 게 너무 쉬운 거예요. 그게 너무 모순적으로 느껴졌어요. 그래서 일부러 복잡하게 만든 거죠. 울퉁불퉁한 표면에 반듯하게 집을 그리려면 힘이 들어요. 우리 사회가 쉽지만은 않잖아요. 그 속에서도 바르게 살기 위한 노력을 그리는 행위 안에서도 담고 싶었어요.”

합창 4, 70x90cm, Acrylic, Sand, and Formboard on Panel, 2023. ⓒ서유영

시냅스의 모양에서 모티브를 얻은 작품이다.

풀씨 한 알, 141x116.8cm, Acrylic, Rope, and Collage on Canvas, 2020. ⓒ서유영

우리는 새로운 강을 건너고 있다 6, 72.7x90.9cm, Acrylic, Sand, and Collage on Canvas, 2022. ⓒ서유영

Chapter 3.
공감의 시냅스를 뻗다

 

새롭게 열린 미술이라는 문으로 기꺼이 들어선 서 작가는 지나온 길들이 “하나도 아깝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제 삶의 궤적 하나하나가 누적되어 지금에 반영이 되었다고 느껴요. 실패와 상처의 경험들까지도요. 그래서 그 모든 과정이 하나도 헛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요.”


미술과 접점이 없어 보이는 과학도에서 화가로, 전혀 알지 못하는 길을 걷는 것이 두렵지 않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고민이 전혀 없었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저는 주류에 속하지 않는 상황이 익숙한 사람이었어요. 학부는 과학교육과를 졸업하고 대학원은 자연대로 진학했죠. 사범대 학생이 자연대에 온 것을 탐탁지 않아 하는 시선도 있었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았어요. 나만 잘하면 되지! (웃음) 작가가 될 때도 마찬가지였어요.

 

또 우리는 보통 ‘과학’ 하면 암기 위주의 고등학교 교과 과목을 생각하는데, 실제 연구는 그것과 거리가 멀어요. 연구는 팩트 하나를 찾기 위해 이론을 세우고 실험을 설계해서 그 팩트를 찾아 나가는 과정이에요. 마치 빈 캔버스에 어떻게 내 철학을 담아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까 고민하듯이요. 그 생각의 구조가 아주 비슷하죠.”

 

이제 서유영의 작업 세계는 너와 나의 이야기를 넘어 사회의 이야기로 확대되고 있습니다. 팬데믹 이후 선보인 <우리는 지금 새로운 강을 건너고 있다>에서는 삼각형 지붕 외에도 사다리꼴 모양의 지붕을 등장시키며 모양에서도 변화를 꾀했습니다.

 

그림을 그리며 ‘관계’에 대해 곱씹어 보게 되었다는 작가는 이제 공감의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세포와 세포는 서로 떨어져 있지만, 그 사이에서 신호를 전달해 주는 신경전달물질을 통해 소통하거든요. 그 모습이 사람과 닮았어요. 사람도 서로 붙어있지는 않지만, 관계를 맺고 자기의 뜻을 전달할 수 있죠.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간격을 이해하고 다름을 인정하기 위한 ‘신경전달물질’은 공감이라고 생각해요.”

 

캔버스를 가득 메운 집 하나하나에 희망이, 공감이 숨어있는 듯합니다.





ARTTAG 변혜령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