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미술 #조명 #빛 #설치 #공간 #목재 #반사체 #이야기

#art #lamp #light #installation #space #wood #reflector #story


THE REFLECTORS WITH EVENTS


Concept

I think about the structure of music and theater, finding the temporality of the three-dimensional structure. I imagine stories and create an image of the moment, including the setting, the characters, and the organization and movement of events.

Design

The walls and upper space of the room become a large canvas, which receives light sources and provides emotional pathways. Freestanding objects on the floor should be shaped and colored to succinctly reveal their character within the narrative.

Extending the Work

Imagine objects that can be used as mise en scène of theater.

Plan lighting for walls and floating devices.

Use the space in a variety of ways.

Formative Design

Provide the appropriate levels of brightness for the space.

Be easy to use.

NOT be intrusive or uncomfortable for the human eye to enjoy.

Create a gentle distance in relationships.

Balance with sound.



우리의 하루는 빛과 함께 시작합니다. 빛은 생명을 무럭무럭 자라게 하고, 세계를 명확히 인식하게끔 하죠. 사람의 손으로 만드는 물건 중 머리 위 태양을 가장 닮은 오브제는 조명일 겁니다. 철학을 담은 조명을 만드는 작업자 수사무하를 만났습니다.

Moriai RS02 ⓒ수사무하

Chapter 1.
언어 너머의 세계


#음악 #철학 #비트겐슈타인

작가는 자신을 ‘질문을 많이 하는 아이’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어른들의 눈에 시답지 않은 질문을 하곤 했죠. 오히려 저는 어른들의 그 태도가 시답지 않았어요. 항상 돌아오는 건 뻔한 이야기였거든요.”

 

사회는 정해진 답과 똑같은 삶을 요구했습니다. 학창 시절, 작가가 피난처이자 돌파구로 삼았던 곳은 책과 음악이었습니다. 헤르만 헤세의 소설부터 마르쿠스 아우렐리스, 오죠 라즈니쉬, 움베르토 에코…. 당시 서점 구석에 쭈그려 앉아 읽었던 글과 용돈을 모아 산 음반으로 들었던 음악은 지금의 수사무하를 이루는 자양분이 됐습니다. 법학과에 진학한 이후에는 학과 생활을 제쳐두고 인디밴드를 만들어 활동하기도 했죠. 밴드 생활은 졸업과 동시에 끝이 났습니다. 작가는 여의도 직장인이 되었습니다.

UncleSam RS01 ⓒ수사무하

훌쩍 캐나다로 떠나 요리를 배우게 된 것은 그로부터 약 10년이 지나 여의도에서 사업을 꾸리고 있을 때였습니다. 당시 하던 일은 기업에 경영 자동화 시스템을 알선하는 일이었습니다.

 

“제가 원하는 것은 뭔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거였어요. 조직 생활임에도 불구하고 회사 생활을 오래 할 수 있었던 것은, 새로운 아이디어에 살을 붙여 구체화하는 작업이었기 때문이었죠. ‘이것도 창작이야’ 스스로를 위로한 거예요. 그러나 혼자 있을 때는 ‘이건 내가 아니다’라는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상승세였던 회사를 정리하고 다시 학생이 되기로 결심한 데에는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의 영향이 컸습니다.

 

“제가 하는 일이 모두 말로 하는 일이었으니 언어에 대한 고민이 많았어요. 비트겐슈타인이 ‘언어가 도달하지 못하는 지점에서는 침묵해야 한다’고 했는데, 그 말을 듣고 ‘그동안 뭐 했지?’ 싶더라고요. 말을 수단으로 삼아 해왔던 일들이 상당 부분 위선이었겠구나.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을 논리에 질까 봐, 혹은 부끄러워서 계속 싸워온 것 아닌가.”

 

“말할 수 없는 것에 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는 철학자의 말은 나침반이 되었습니다. 작가는 “비트겐슈타인이 내놓은 ‘침묵’이라는 결론을 마음에 담고, 이를 체험으로 풀어내야겠다”고 다짐했다고 합니다. 이는 신체적 노동이 갖는 가치를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캐나다에서 문득 요리를 배우기로 택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입니다.

 

작가는 한국에 돌아온 후에야 오랫동안 마음에 품어왔던 공예를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가구 공방에서 조수로 일하며 기본적인 나무 다루는 법을 배웠습니다.

 

“이 공방에서 다 배운 것 같으면 다른 공방으로 옮기면서 열심히 배웠어요. 금속 작업을 하는 곳에 가서 금속공예도 배우고, 공장 비슷한 데 가서 자르고 용접하는 일도 하고요. 도예도 배웠고요. 내 것을 하기 전에 필요한 소재들을 한 번씩 다뤄봐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Moriai RS01 ⓒ수사무하

Ambrosia RS02 ⓒ수사무하

#수사무하

작가는 2019년부터 ‘수사무하’라는 이름 아래 작업들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수사무하는 수행자를 뜻하는 ‘수사’에 춤추는 물을 의미하는 ‘무하’를 붙여 탄생한 이름입니다.

 

다시 시작하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결코 뒤돌아보지는 않았습니다. “제 자신에게 그런 말을 많이 했어요. ‘괴롭지만 이건 과정이야. 분명히 지나. 어떠한 조형이든 하나씩 올 거야.’ 그것들을 내가 생각하는 커다란 이야기 안에 하나하나 놓고 나중에 보여줄 수 있을 거라는 확신도 있었죠.”

23 Ambrosia KQZ, ⌀150x520mm, Hard Maple, Ebonized Ash, Brass, Fabric, 2023. ⓒ수사무하

Chapter 2.
조명에 이야기를 담다


신탁에 의한 자연과 사회가 모티브

<Dodona Edition> 중 Pianeta, Ebony Ash, Hard Maple, Brass, Micro Fiber fabric, 2022. ⓒ수사무하

#조명

그가 조명을 만드는 일은 마치 극 속의 인물, 사건과 배경을 만드는 일과 비슷합니다.

 

“발레 <호두까기 인형>을 예로 들자면, 작품에서 받은 인상을 토대로 비슷한 극을 구성해 봐요. 이런 이야기 안에 이런 캐릭터는 어떨까? 인물이라면 키가 크면 좋을까, 작으면 좋을까? 하는 식으로요.” 

 

설정과 이야기, 성격을 부여하고 어울리는 소재를 세심하게 고릅니다. 원기둥 형태의 금속을 사용하더라도 파이프를 사용하느냐, 평철을 구부려 만드느냐에 따라 주는 느낌이 달라지기 때문이죠. 하나의 디자인을 완성하는 과정은 재료를 깎아보고, 잘라보고, 붙여보는 일의 반복입니다.


한 개의 주제를 최소 3개의 작업으로 풀어내는데, 이는 주제의 정체성을 명확히 하고 직관적인 이해를 돕기 위함입니다. 신탁에 의한 자연과 사회에서 모티브를 얻은 <Dodona> 에디션 중 ‘Pianeta’ 시리즈는 키가 크고 작은 여러 개의 조명으로 구성됐습니다. 모두 다른 꼴을 하고 있지만, 같은 태양을 공유하는 우리 태양계를 연상시킵니다.

 

작가는 클래식 음악에서 활용하는 작품 번호(Opus·Op.)로 작업을 분류하고 있습니다. 그는 “하나의 큰 이야기를 만들어 내기 위함”이라고 그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여러 개의 막들이 모여 하나의 극을 이루고 여러 개의 악장이 모여 교향곡을 완성하듯, 조명 하나하나가 모여 큰 세계와 이야기를 이룹니다.

이 외에도 디자인하는 과정에서 조명이 놓이는 공간과 사용자를 고려합니다. 조명과 벽의 거리, 조명과 사용자의 거리, 빛이 닿는 거리를 계산합니다.

 

“가장 중요한 건 광원의 위치예요. 빛을 어디에 둘 것인지, 빛과 쉐이드의 균형을 어떻게 맞출 것인지를 고민해야 합니다.”


작업의 주를 이루는 재료는 나무. 주로 나무를 빠르게 회전시켜 칼로 깎아내는 터닝 기법을 사용합니다.

 

“소재가 주는 따듯한 느낌도 있고, 목재는 아주 예민한 재료라 누가 작업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아주 달라요. (터닝은) 아주 날카로운 칼끝과 빠르게 회전하는 속도에 맞춰 목재에 깊은 상처를 만드는 작업이에요. 0.1mm만 살짝 빗나가도 상처가 되는데 그 0.1mm를 잘 타고 들어가면 완전한 라인이 만들어지거든요. 그때 얻는 쾌감이 있죠.”

 

원하는 색을 얻기 위해 칠 대신 나무를 염색하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산성 안료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애쉬목에 안료를 천천히 입히고 깎아내는 과정을 반복하며 원하는 톤을 찾아갑니다. 안료를 만드는 데에만도 6개월의 숙성 기간이 필요하고, 안료가 마르는 시간을 기다려야 해 오랜 시간이 걸리는 작업이지만, 이를 고집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염색을 하면 목재의 결을 살리면서도 색을 입힐 수 있어요. 나무가 자라면서 생기는 상처들까지 모두 드러나거든요. 우리도 크면서 흉터가 생기듯 자연스러운 과정이지만 누군가에게는 흠집으로 보일 수 있죠. 보통 많이 하는 칠을 하게 되면 상처는 가릴 수 있지만 목재가 갖는 자연스러운 느낌이 없어져요.”


디자인 단계에서는 자유롭게 창조성을 발휘해야 하지만, 제작에 착수하면 철저히 계획에 맞게 공정을 밟아 나가야 합니다. 다양한 재료를 사용하고 전기 등 기술적인 문제를 모두 고려해야 하는 조명의 특성 때문입니다.

 

“(조명 제작은) 경로를 이탈하면 수습할 수 없어요. 다시 시작해야 하죠. 디자인하는 과정을 지나면 그 이후는 막노동이에요. (웃음) 거기에 노동의 가치가 있죠.”

<Dodona Edition> 중 22 Op 01. Pianeta 01, Ebony Ash, Hard Maple, Brass, Micro Fiber fabric, 2022. ⓒ수사무하

Chapter 3.
춤추는 물을 따라


인상적 인물이나 음악적 선율을  이미지로 구성

<Muha Nova> 시리즈 중 23 Op 08. Volante Cleo 01, Ebony Ash, Hard Maple, Langas, Brass, Micro Fiber fabric, 2023. ⓒ수사무하

#시간

‘아름다운 시대’라고 불렸던 벨 에포크 시대, 예술가와 철학자들이 모여 치열하게 이야기를 나누던 살롱 구석에 자신의 조명을 놓아두고 싶다는 수사무하의 동력은 연민(compassion), 동시대의 이야기를 듣고, 묻고, 공감하는 일입니다.

 

“왜 이런 작품들을 만드느냐, 스토리텔링과 공감을 위해서예요. 저도 드라마를 보면서 울고 웃고, 코미디를 보면서 깔깔거리며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이니까요. 거기서 나오는 주제들이 너무 많아요.”

22 Pianeta with moon, ⌀ 400x700mm, Ebonized ash, Fabric, 2022.  ⓒ수사무하

이제 수사무하는 점을 넘어 끝없이 선으로 이어질 조명을 꿈꿉니다. 정적인 오브제에 시간성을 부여하는 것이 그의 목표입니다.

 

“저수지에 갇혀있는 물이라도 움직임이 있어요. 정적인 구조 안에서도 시간적인 움직임이 보입니다. 그런 표현을 하고 싶어요. 시간과 공간을 빛으로 장악할 수 있게 되면 제 이야기가 완결될 거라고 봅니다.”

 

성긴 언어의 그물 사이를 빠져나온 빛이 흐르는 곳으로, 그의 여정은 계속됩니다.

 

“저에게 빛은 사고의 키잡이죠. 빛은 생명의 인식과 함께 시작해 우리가 소멸하는 순간 함께 사라지니까요. 비트겐슈타인이 손가락으로 가리켰던 침묵 너머에 진정한 빛이 있다고 저는 확신해요.”





ARTTAG 변혜령 에디터


#현대미술 #조명 #빛 #설치 #공간 #목재 #반사체 #이야기

#art #lamp #light #installation #space #wood #reflector #story


THE REFLECTORS WITH EVENTS


Concept

I think about the structure of music and theater, finding the temporality of the three-dimensional structure. I imagine stories and create an image of the moment, including the setting, the characters, and the organization and movement of events.

Design

The walls and upper space of the room become a large canvas, which receives light sources and provides emotional pathways. Freestanding objects on the floor should be shaped and colored to succinctly reveal their character within the narrative.

Extending the Work

Imagine objects that can be used as mise en scène of theater.

Plan lighting for walls and floating devices.

Use the space in a variety of ways.

Formative Design

Provide the appropriate levels of brightness for the space.

Be easy to use.

NOT be intrusive or uncomfortable for the human eye to enjoy.

Create a gentle distance in relationships.

Balance with sound.


우리의 하루는 빛과 함께 시작합니다. 빛은 생명을 무럭무럭 자라게 하고, 세계를 명확히 인식하게끔 하죠. 사람의 손으로 만드는 물건 중 머리 위 태양을 가장 닮은 오브제는 조명일 겁니다.

철학을 담은 조명을 만드는 작업자 수사무하를 만났습니다.

Moriai RS02 ⓒ수사무하

UncleSam RS01 ⓒ수사무하

Moriai RS01 ⓒ수사무하

Ambrosia RS02 ⓒ수사무하

Chapter 1.
언어 너머의 세계


#음악 #철학 #비트겐슈타인

작가는 자신을 ‘질문을 많이 하는 아이’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어른들의 눈에 시답지 않은 질문을 하곤 했죠. 오히려 저는 어른들의 그 태도가 시답지 않았어요. 항상 돌아오는 건 뻔한 이야기였거든요.”

 

사회는 정해진 답과 똑같은 삶을 요구했습니다. 학창 시절, 작가가 피난처이자 돌파구로 삼았던 곳은 책과 음악이었습니다. 헤르만 헤세의 소설부터 마르쿠스 아우렐리스, 오죠 라즈니쉬, 움베르토 에코…. 당시 서점 구석에 쭈그려 앉아 읽었던 글과 용돈을 모아 산 음반으로 들었던 음악은 지금의 수사무하를 이루는 자양분이 됐습니다. 법학과에 진학한 이후에는 학과 생활을 제쳐두고 인디밴드를 만들어 활동하기도 했죠. 밴드 생활은 졸업과 동시에 끝이 났습니다. 작가는 여의도 직장인이 되었습니다.

 

훌쩍 캐나다로 떠나 요리를 배우게 된 것은 그로부터 약 10년이 지나 여의도에서 사업을 꾸리고 있을 때였습니다. 당시 하던 일은 기업에 경영 자동화 시스템을 알선하는 일이었습니다.

 

“제가 원하는 것은 뭔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거였어요. 조직 생활임에도 불구하고 회사 생활을 오래 할 수 있었던 것은, 새로운 아이디어에 살을 붙여 구체화하는 작업이었기 때문이었죠. ‘이것도 창작이야’ 스스로를 위로한 거예요. 그러나 혼자 있을 때는 ‘이건 내가 아니다’라는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상승세였던 회사를 정리하고 다시 학생이 되기로 결심한 데에는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의 영향이 컸습니다.

 

“제가 하는 일이 모두 말로 하는 일이었으니 언어에 대한 고민이 많았어요. 비트겐슈타인이 ‘언어가 도달하지 못하는 지점에서는 침묵해야 한다’고 했는데, 그 말을 듣고 ‘그동안 뭐 했지?’ 싶더라고요. 말을 수단으로 삼아 해왔던 일들이 상당 부분 위선이었겠구나.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을 논리에 질까 봐, 혹은 부끄러워서 계속 싸워온 것 아닌가.”

 

“말할 수 없는 것에 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는 철학자의 말은 나침반이 되었습니다. 작가는 “비트겐슈타인이 내놓은 ‘침묵’이라는 결론을 마음에 담고, 이를 체험으로 풀어내야겠다”고 다짐했다고 합니다. 이는 신체적 노동이 갖는 가치를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캐나다에서 문득 요리를 배우기로 택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입니다.

 

작가는 한국에 돌아온 후에야 오랫동안 마음에 품어왔던 공예를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가구 공방에서 조수로 일하며 기본적인 나무 다루는 법을 배웠습니다.

 

“이 공방에서 다 배운 것 같으면 다른 공방으로 옮기면서 열심히 배웠어요. 금속 작업을 하는 곳에 가서 금속공예도 배우고, 공장 비슷한 데 가서 자르고 용접하는 일도 하고요. 도예도 배웠고요. 내 것을 하기 전에 필요한 소재들을 한 번씩 다뤄봐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수사무하

작가는 2019년부터 ‘수사무하’라는 이름 아래 작업들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수사무하는 수행자를 뜻하는 ‘수사’에 춤추는 물을 의미하는 ‘무하’를 붙여 탄생한 이름입니다.

 

다시 시작하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결코 뒤돌아보지는 않았습니다. “제 자신에게 그런 말을 많이 했어요. ‘괴롭지만 이건 과정이야. 분명히 지나. 어떠한 조형이든 하나씩 올 거야.’ 그것들을 내가 생각하는 커다란 이야기 안에 하나하나 놓고 나중에 보여줄 수 있을 거라는 확신도 있었죠.”


23 Ambrosia KQZ, ⌀150x520mm, Hard Maple, Ebonized Ash, Brass, Fabric, 2023. ⓒ수사무하

신탁에 의한 자연과 사회가 모티브.

<Dodona Edition> 중 Pianeta, Ebony Ash, Hard Maple, Brass, Micro Fiber fabric, 2022. ⓒ수사무하

Chapter 2.
조명에 이야기를 담다


#조명

그가 조명을 만드는 일은 마치 극 속의 인물, 사건과 배경을 만드는 일과 비슷합니다.

 

“발레 <호두까기 인형>을 예로 들자면, 작품에서 받은 인상을 토대로 비슷한 극을 구성해 봐요. 이런 이야기 안에 이런 캐릭터는 어떨까? 인물이라면 키가 크면 좋을까, 작으면 좋을까? 하는 식으로요.” 

 

설정과 이야기, 성격을 부여하고 어울리는 소재를 세심하게 고릅니다. 원기둥 형태의 금속을 사용하더라도 파이프를 사용하느냐, 평철을 구부려 만드느냐에 따라 주는 느낌이 달라지기 때문이죠. 하나의 디자인을 완성하는 과정은 재료를 깎아보고, 잘라보고, 붙여보는 일의 반복입니다.


한 개의 주제를 최소 3개의 작업으로 풀어내는데, 이는 주제의 정체성을 명확히 하고 직관적인 이해를 돕기 위함입니다. 신탁에 의한 자연과 사회에서 모티브를 얻은 <Dodona> 에디션 중 ‘Pianeta’ 시리즈는 키가 크고 작은 여러 개의 조명으로 구성됐습니다. 모두 다른 꼴을 하고 있지만, 같은 태양을 공유하는 우리 태양계를 연상시킵니다.

 

작가는 클래식 음악에서 활용하는 작품 번호(Opus·Op.)로 작업을 분류하고 있습니다. 그는 “하나의 큰 이야기를 만들어 내기 위함”이라고 그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여러 개의 막들이 모여 하나의 극을 이루고 여러 개의 악장이 모여 교향곡을 완성하듯, 조명 하나하나가 모여 큰 세계와 이야기를 이룹니다.

 

이 외에도 디자인하는 과정에서 조명이 놓이는 공간과 사용자를 고려합니다. 조명과 벽의 거리, 조명과 사용자의 거리, 빛이 닿는 거리를 계산합니다.

 

“가장 중요한 건 광원의 위치예요. 빛을 어디에 둘 것인지, 빛과 쉐이드의 균형을 어떻게 맞출 것인지를 고민해야 합니다.”


작업의 주를 이루는 재료는 나무. 주로 나무를 빠르게 회전시켜 칼로 깎아내는 터닝 기법을 사용합니다.

 

“소재가 주는 따듯한 느낌도 있고, 목재는 아주 예민한 재료라 누가 작업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아주 달라요. (터닝은) 아주 날카로운 칼끝과 빠르게 회전하는 속도에 맞춰 목재에 깊은 상처를 만드는 작업이에요. 0.1mm만 살짝 빗나가도 상처가 되는데 그 0.1mm를 잘 타고 들어가면 완전한 라인이 만들어지거든요. 그때 얻는 쾌감이 있죠.”

 

원하는 색을 얻기 위해 칠 대신 나무를 염색하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산성 안료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애쉬목에 안료를 천천히 입히고 깎아내는 과정을 반복하며 원하는 톤을 찾아갑니다. 안료를 만드는 데에만도 6개월의 숙성 기간이 필요하고, 안료가 마르는 시간을 기다려야 해 오랜 시간이 걸리는 작업이지만, 이를 고집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염색을 하면 목재의 결을 살리면서도 색을 입힐 수 있어요. 나무가 자라면서 생기는 상처들까지 모두 드러나거든요. 우리도 크면서 흉터가 생기듯 자연스러운 과정이지만 누군가에게는 흠집으로 보일 수 있죠. 보통 많이 하는 칠을 하게 되면 상처는 가릴 수 있지만 목재가 갖는 자연스러운 느낌이 없어져요.”

 

디자인 단계에서는 자유롭게 창조성을 발휘해야 하지만, 제작에 착수하면 철저히 계획에 맞게 공정을 밟아 나가야 합니다. 다양한 재료를 사용하고 전기 등 기술적인 문제를 모두 고려해야 하는 조명의 특성 때문입니다.

 

“(조명 제작은) 경로를 이탈하면 수습할 수 없어요. 다시 시작해야 하죠. 디자인하는 과정을 지나면 그 이후는 막노동이에요. (웃음) 거기에 노동의 가치가 있죠.”

<Dodona Edition> 중 22 Op 01. Pianeta 01, Ebony Ash, Hard Maple, Brass, Micro Fiber fabric, 2022. ⓒ수사무하

인상적 인물이나 음악적 선율을  이미지로 구성.

<Muha Nova> 시리즈 중 23 Op 08. Volante Cleo 01, Ebony Ash, Hard Maple, Langas, Brass, Micro Fiber fabric, 2023. ⓒ수사무하

22 Pianeta with moon, ⌀ 400x700mm, Ebonized ash, Fabric, 2022.  ⓒ수사무하

Chapter 3.
춤추는 물을 따라

 

#시간

‘아름다운 시대’라고 불렸던 벨 에포크 시대, 예술가와 철학자들이 모여 치열하게 이야기를 나누던 살롱 구석에 자신의 조명을 놓아두고 싶다는 수사무하의 동력은 연민(compassion), 동시대의 이야기를 듣고, 묻고, 공감하는 일입니다.

 

“왜 이런 작품들을 만드느냐, 스토리텔링과 공감을 위해서예요. 저도 드라마를 보면서 울고 웃고, 코미디를 보면서 깔깔거리며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이니까요. 거기서 나오는 주제들이 너무 많아요.”


이제 수사무하는 점을 넘어 끝없이 선으로 이어질 조명을 꿈꿉니다. 정적인 오브제에 시간성을 부여하는 것이 그의 목표입니다.

 

“저수지에 갇혀있는 물이라도 움직임이 있어요. 정적인 구조 안에서도 시간적인 움직임이 보입니다. 그런 표현을 하고 싶어요. 시간과 공간을 빛으로 장악할 수 있게 되면 제 이야기가 완결될 거라고 봅니다.”

 

성긴 언어의 그물 사이를 빠져나온 빛이 흐르는 곳으로, 그의 여정은 계속됩니다.

 

“저에게 빛은 사고의 키잡이죠. 빛은 생명의 인식과 함께 시작해 우리가 소멸하는 순간 함께 사라지니까요. 비트겐슈타인이 손가락으로 가리켰던 침묵 너머에 진정한 빛이 있다고 저는 확신해요.”





ARTTAG 변혜령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