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미술 #서양화 #회화 #유화 #아크릴 #점묘 #자연 #식물

#art #painting #fineart #oilpainting #acrylic #pointillism #nature #plant


OBSERVATION OF NATURE


I am incorporating my observations of plants and landscapes, and my personal experiences, into my painting work. I don't deny the power of painting, but I also want to capture elements of a person's biography, even if the painting itself is not rooted in a specific philosophy. This is why the inspiration for my "Landscape with a Story" series comes from my "Vitalizing Freedom" series, and elements from the "Vitalizing Freedom" series naturally flow into my "Flowers of Paradise" series. Moving forward, instead of focusing on a fixed story, I want to examine the artist's perspective and aestheticism, which is required in today's era and must constantly be re-evaluated.



단아한 백자에는 탐스럽게 피어난 꽃이 있습니다. 화사한 색을 자랑하는 꽃들 사이로 나비와 새들이, 서로를 바라보는 연인이 숨어있습니다.

문득 바람을 타고 싱그러운 꽃내음이 불어오는 듯합니다. 김영진 작가를 만났습니다.

자유소생도 10-12, 45.5x45.5cm, 캔버스에 아크릴, 2022. ⓒ김영진

Chapter 1.
소년, 화가가 되다


김영진 작가는 남들보다 조금 늦은 고등학교 2학년, 새 학기가 시작되고 한 달쯤 지나 처음 미술 학원을 찾았습니다. 처음엔 야간자율학습을 빠지는 친구가 부러워서였습니다. 만화를 좋아하던 터라 ‘이건 나도 할 수 있겠다’는 마음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소년은 일 년이 안 되어 화가로 죽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원래는 운동하는 친구들을 따라 막연히 사회체육과에 가야겠다고 생각했었죠. 그런데 하루는 어머니가 조용히 저를 부르시더니 ‘앉아서 하는 일을 했으면 좋겠다’고 하시더군요. 평소에 그런 말씀을 안 하시던 분이 진지하게 말씀하시니 알겠다고 했죠. 앉아서 그림 그리는 사람이 되었으니 말을 잘 들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돌아보면 안정적인 직업을 가지라는 말씀이었던 것 같아요. (웃음)”

 

당시 다니던 곳은 고향으로 잠시 돌아온 화가의 작은 화실이었습니다. 작업실을 겸하는 그곳에서 어린 화가의 예술 세계는 건설되어 갔습니다.

 

“선생님이 보시던 철학 책들도 그때 처음 읽었고 유화나 사진도 배웠죠. 보통 대학원에서 배우는 것들을 고등학생 때 접하면서 시작은 늦었지만 (작가로서의) 정체성은 금방 찾았습니다.

외국에 살았다거나 다른 삶을 살았으면 지금과 같은 그림은 그릴 수 없었을 겁니다. 하늘의 색, 단풍이 든 산의 모습 등 제가 본 풍경과 자연을 그리기 시작한 것은 당연한 일이죠.”

이야기가 있는 풍경 29, 130.3x80.3cm, 캔버스에 유채, 아크릴, 2012. ⓒ김영진

#이야기가 있는 풍경

김영진 작가의 첫 번째 작업은 어린 시절의 기억이 담긴 <이야기가 있는 풍경> 연작입니다. 작가는 7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사는 경기도 용인시의 작은 마을에서 유년을 보냈습니다. 주위엔 논과 과실수 밭이 펼쳐져 있고 첩첩이 산들이 펼쳐지던 곳. 목수였던 아버지가 가족들을 위해 직접 지은 하얀 대문 집의 마당에는 아버지가 심은 꽃들이 철마다 피어나곤 했습니다. 작가는 아련한 추억의 정경을 캔버스 위로 옮겼습니다.

 

“동네 형들과 머루 밭에서 뛰어놀고, 냇가에서 가재를 잡아먹던 그 시절이 지금 생각해 보면 ‘가장 좋은 풍경’이었어요.”

 

어린 소년의 눈으로 바라본 <이야기가 있는 풍경>에 담긴 것은 작가 자신의 이야기였습니다. 이후 대표작인 <자유소생도>에 이르러 이야기는 더욱 확대됐습니다.

자유소생도 15,116.8x116.8cm, 캔버스에 아크릴, 2014. ⓒ김영진

#자유소생도

<자유소생도>는 산책길에 만난 이름 모를 풀꽃에서 출발한 연작으로, 길섶에서 해마다 끈질기게 새로운 싹을 틔우는 소생(疏生)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입니다.


변두리 또는 인식 이외의 공간에서 묵묵히 자라나는 생명력이야말로 참된 삶의 주인이 아닌가 생각되어 이와 같은 지점을 인간의 삶에 투영시키고 있다. _작가 노트 중에서

 

뿌리째 화면을 채웠던 다종다양한 풀꽃들은 결혼 이후 화병에 소담하게 자리 잡았고, 작가를 본뜬 인물인 차를 마시는 남자를 시작으로 그림에는 점점 많은 사람의 이야기가 담겼습니다. 작가가 숨겨놓은 상징들도 있습니다. 꽃잎 사이를 날아다니는 나비는 못다 한 말을 전해주는 매개체, 연인의 손에 놓인 새는 대화를 의미합니다.


“초기에는 ‘새 한 마리가 외로워 보이니 한 마리를 더 그려달라’는 요청이 있으면 단호하게 안 된다고 말하곤 했죠. 지금은 제가 먼저 ‘가족이 몇 명이세요?’ 물어봐요. (웃음) 그림은 제가 그렸지만, 저보다 더 오래 그림을 갖고 있을 분은 컬렉터죠. 스스로는 그리지 않았을 것들을 그리면서 제 세계도 더 넓어지는 걸 느낍니다.”

도원의 꽃 50-1, 50x140cm, 캔버스에 아크릴, 2023. ⓒ김영진

#도원의꽃

김영진 작가가 최근 집중하고 있는 작업은 <도원의 꽃> 연작. <자유소생도> 이전부터 오랜 시간 구상해왔던 작업입니다.

 

“하루는 연꽃밭에 출사를 갔습니다. 실제로 가보면 벌레도 많고 물도 깨끗하지 않아요. 그 시꺼먼 진흙밭에서 연꽃이 뽀얗게 올라오는 것이 뇌리에 깊게 남았어요.”

Chapter 2.
자연을 그리는 시간


10년 전 꿈 2, 150x150cm, 캔버스에 유채, 아크릴, 2012. ⓒ김영진

#마블링 #베이스

김영진 작가의 작업은 공통적으로 물감을 섞어 마구 뿌리는 데서 출발합니다. 원하는 이미지가 나타날 때까지 마블링 작업을 이어갑니다. 작가는 의도가 담길 수 없는 자연스러운 작업이라는 점에서 마블링에 매력을 느낀다고 설명했습니다.

 

“물감이 서로 엉키는 모습이 식물이 자라나는 모습과 비슷한 것 같아요. 인위적인 뭔가를 하지 않아도 자라나는 식물처럼 물감도 스스로 엉키죠. 그 모습이 식물의 뿌리처럼 보이기도 하고요.”

 

배경이 완성되면 그 위에 수성 색연필로 스케치하고 채색을 시작합니다. 정석 그대로, 어느 과정 하나 허투루 하는 것이 없습니다. 원근감을 위해 명도별로 물감을 미리 조색해 준비하고 어두운색에서 점진적으로 밝게 쌓아나갑니다.

 

“보통 한 컬러당 10단계 정도로 나누는데, 작품 하나를 완성하는데 120색 정도를 사용합니다. 스케치한 후엔 채색 전에 번호를 써놓죠. '여기는 분홍색 8번, 여기는 분홍색 1번…' 이런 식이에요. 채색의 과정에서 즉흥은 거의 개입하지 않습니다.”

 

이 과정에서 안료의 입자 크기와 각 색의 마르는 속도도 모두 고려합니다. 이유는 단 하나, 내구성 때문입니다.

 

“작가는 백 년을 채 못 살지만 그림은 수백 년을 살 텐데, 혹시나 금이 가거나 깨지면 속상할 것 같아요. 또 그림을 사고 판다는 것은 시간과 시간을 바꾸는 일이잖아요. 누군가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번 시간과 제가 쪼그려 앉아 그림을 그렸던 시간, 서로의 시간을 인정해 주는 거죠. 제가 최선을 다해 그림을 그려야 찝찝하지 않더라고요.”

도원의 꽃 20, 40.9x31.8cm, 캔버스에 아크릴, 2020. ⓒ김영진

이후 작은 점으로 여백을 채워 마무리합니다. 작가는 전통적인 공기 원근법을 대신해 공간을 표현할 방법을 고심하다, 점·선·면 중 가장 작은 점으로 공기 중에 부유하는 에너지를 나타냈습니다.

 

점들은 때로는 빛의 입자가 되기도 합니다.

 

“우리는 사물을 본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사물에 반사된 빛을 보는 거죠. 문득 여름날 연꽃밭을 보는데 수면에 빛이 반짝반짝 비치더군요. 그 모습을 보고 내가 연꽃을 그리는 건가, 연꽃 사이의 빛을 그리는 건가 헷갈리더라고요.”

 

작가는 <도원의 꽃>에서 형상을 흐트러트리는 데 집중했습니다. 빛의 입자와 공기 입자들이 혼합된 것 같은 이 점들은, 언제든지 분해될 수도 있고, 여러 색으로 조합할 수도 있습니다. 배경색과 본색이 섞여 만드는 신비한 색조가 환상 속 ‘도원’을 연상하게 합니다.

도원의 꽃 100-1, 130.3x130.3cm, 캔버스에 아크릴, 2023. ⓒ김영진

Chapter 3.
염원을 담은 회화


김영진 작가 ⓒ김영진

#염원

화가의 일상은 완벽한 완성작 하나를 위해 수백 개의 도자기를 굽는 도공을 닮았습니다. 정성을 담아 구운 도자기를 깨뜨려야 하는 순간이 오더라도 그리기를 멈추지 않습니다.

 

“피카소가 남긴 몇만 점의 작품 중 유화는 2800여 점밖에 안 돼요. 조금인 것 같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1년에 50점씩 50년을 그려야 2500점을 그릴 수 있거든요. 사람의 수명이 짧은 탓도 있겠지만, 생각보다 한 사람이 평생 그릴 수 있는 양이 많지 않습니다. 그 안에서 좋은 작품을 남기려면 꾸준한 연구가 필요하죠.”

 

김영진 작가는 꾸준히 1년에 100점에서 120점씩을 그리고 있습니다. 단순하게 계산해 보면 꼬박 사흘에 한 점씩을 그리는 셈입니다. 하나의 그림을 완성하는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습니다. 김 작가는 “그림을 그릴 때는 마음속에서는 생각들이 불쑥불쑥 고개를 든다”고 말했습니다.

자유소생도 10-13, 45.5x45.5cm, 캔버스에 아크릴, 2022. ⓒ김영진

“마음의 형태가 흙탕물 같죠. 그러나 맑지 않다고 화내지 않습니다. 친구가 생각나면 전화도 하고 고민도 나눕니다. 깜빡한 친구를 위해 기도하기도 하고요. 염원의 시간이 깃들어 별것 아닌 꽃 그림에서도 세상이 보입니다.”


흔들리기 쉬운 마음의 균형을 잡으며 염원을 담은 그림. 작가는 자신의 그림이 자연과 같은 그림이 되기를 바랍니다.

 

“산에 올라가서 풍경을 내려다보면 처음에는 멋있다고 감탄하죠. 시간이 조금 지나면 멍하게 바라보게 됩니다. 그렇게 바라볼 수 있는 그림을 그리고 싶어요. 마음이 흔들릴 때 편안하게 볼 수 있는 그림을요.”





ARTTAG 변혜령 에디터


#현대미술 #서양화 #회화 #유화 #아크릴 #점묘 #자연 #식물

#art #painting #fineart #oilpainting #acrylic #pointillism #nature #plant


OBSERVATION OF NATURE


I am incorporating my observations of plants and landscapes, and my personal experiences, into my painting work. I don't deny the power of painting, but I also want to capture elements of a person's biography, even if the painting itself is not rooted in a specific philosophy. This is why the inspiration for my "Landscape with a Story" series comes from my "Vitalizing Freedom" series, and elements from the "Vitalizing Freedom" series naturally flow into my "Flowers of Paradise" series. Moving forward, instead of focusing on a fixed story, I want to examine the artist's perspective and aestheticism, which is required in today's era and must constantly be re-evaluated.


단아한 백자에는 탐스럽게 피어난 꽃이 있습니다. 화사한 색을 자랑하는 꽃들 사이로 나비와 새들이, 서로를 바라보는 연인이 숨어있습니다.

문득 바람을 타고 싱그러운 꽃내음이 불어오는 듯합니다. 김영진 작가를 만났습니다.

자유소생도 10-12, 45.5x45.5cm, 캔버스에 아크릴, 2022. ⓒ김영진

이야기가 있는 풍경 29, 130.3x80.3cm, 캔버스에 유채, 아크릴, 2012. ⓒ김영진

자유소생도 15,116.8x116.8cm, 캔버스에 아크릴, 2014. ⓒ김영진

Chapter 1.
소년, 화가가 되다

 

김영진 작가는 남들보다 조금 늦은 고등학교 2학년, 새 학기가 시작되고 한 달쯤 지나 처음 미술 학원을 찾았습니다. 처음엔 야간자율학습을 빠지는 친구가 부러워서였습니다. 만화를 좋아하던 터라 ‘이건 나도 할 수 있겠다’는 마음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소년은 일 년이 안 되어 화가로 죽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원래는 운동하는 친구들을 따라 막연히 사회체육과에 가야겠다고 생각했었죠. 그런데 하루는 어머니가 조용히 저를 부르시더니 ‘앉아서 하는 일을 했으면 좋겠다’고 하시더군요. 평소에 그런 말씀을 안 하시던 분이 진지하게 말씀하시니 알겠다고 했죠. 앉아서 그림 그리는 사람이 되었으니 말을 잘 들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돌아보면 안정적인 직업을 가지라는 말씀이었던 것 같아요. (웃음)”

 

당시 다니던 곳은 고향으로 잠시 돌아온 화가의 작은 화실이었습니다. 작업실을 겸하는 그곳에서 어린 화가의 예술 세계는 건설되어 갔습니다.

 

“선생님이 보시던 철학 책들도 그때 처음 읽었고 유화나 사진도 배웠죠. 보통 대학원에서 배우는 것들을 고등학생 때 접하면서 시작은 늦었지만 (작가로서의) 정체성은 금방 찾았습니다.

외국에 살았다거나 다른 삶을 살았으면 지금과 같은 그림은 그릴 수 없었을 겁니다. 하늘의 색, 단풍이 든 산의 모습 등 제가 본 풍경과 자연을 그리기 시작한 것은 당연한 일이죠.”


#이야기가 있는 풍경

김영진 작가의 첫 번째 작업은 어린 시절의 기억이 담긴 <이야기가 있는 풍경> 연작입니다. 작가는 7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사는 경기도 용인시의 작은 마을에서 유년을 보냈습니다. 주위엔 논과 과실수 밭이 펼쳐져 있고 첩첩이 산들이 펼쳐지던 곳. 목수였던 아버지가 가족들을 위해 직접 지은 하얀 대문 집의 마당에는 아버지가 심은 꽃들이 철마다 피어나곤 했습니다. 작가는 아련한 추억의 정경을 캔버스 위로 옮겼습니다.

 

“동네 형들과 머루 밭에서 뛰어놀고, 냇가에서 가재를 잡아먹던 그 시절이 지금 생각해 보면 ‘가장 좋은 풍경’이었어요.”

 

어린 소년의 눈으로 바라본 <이야기가 있는 풍경>에 담긴 것은 작가 자신의 이야기였습니다. 이후 대표작인 <자유소생도>에 이르러 이야기는 더욱 확대됐습니다.


#자유소생도

<자유소생도>는 산책길에 만난 이름 모를 풀꽃에서 출발한 연작으로, 길섶에서 해마다 끈질기게 새로운 싹을 틔우는 소생(疏生)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입니다.


변두리 또는 인식 이외의 공간에서 묵묵히 자라나는 생명력이야말로 참된 삶의 주인이 아닌가 생각되어 이와 같은 지점을 인간의 삶에 투영시키고 있다. _작가 노트 중에서

 

뿌리째 화면을 채웠던 다종다양한 풀꽃들은 결혼 이후 화병에 소담하게 자리 잡았고, 작가를 본뜬 인물인 차를 마시는 남자를 시작으로 그림에는 점점 많은 사람의 이야기가 담겼습니다. 작가가 숨겨놓은 상징들도 있습니다. 꽃잎 사이를 날아다니는 나비는 못다 한 말을 전해주는 매개체, 연인의 손에 놓인 새는 대화를 의미합니다.


“초기에는 ‘새 한 마리가 외로워 보이니 한 마리를 더 그려달라’는 요청이 있으면 단호하게 안 된다고 말하곤 했죠. 지금은 제가 먼저 ‘가족이 몇 명이세요?’ 물어봐요. (웃음) 그림은 제가 그렸지만, 저보다 더 오래 그림을 갖고 있을 분은 컬렉터죠. 스스로는 그리지 않았을 것들을 그리면서 제 세계도 더 넓어지는 걸 느낍니다.”

 

#도원의 꽃

김영진 작가가 최근 집중하고 있는 작업은 <도원의 꽃> 연작. <자유소생도> 이전부터 오랜 시간 구상해왔던 작업입니다.

 

“하루는 연꽃밭에 출사를 갔습니다. 실제로 가보면 벌레도 많고 물도 깨끗하지 않아요. 그 시꺼먼 진흙밭에서 연꽃이 뽀얗게 올라오는 것이 뇌리에 깊게 남았어요.”




도원의 꽃 50-1, 50x140cm, 캔버스에 아크릴, 2023. ⓒ김영진

10년 전 꿈 2, 150x150cm, 캔버스에 유채, 아크릴, 2012. ⓒ김영진

도원의 꽃 20, 40.9x31.8cm, 캔버스에 아크릴, 2020. ⓒ김영진

Chapter 2.
자연을 그리는 시간


#마블링 #베이스

김영진 작가의 작업은 공통적으로 물감을 섞어 마구 뿌리는 데서 출발합니다. 원하는 이미지가 나타날 때까지 마블링 작업을 이어갑니다. 작가는 의도가 담길 수 없는 자연스러운 작업이라는 점에서 마블링에 매력을 느낀다고 설명했습니다.

 

“물감이 서로 엉키는 모습이 식물이 자라나는 모습과 비슷한 것 같아요. 인위적인 뭔가를 하지 않아도 자라나는 식물처럼 물감도 스스로 엉키죠. 그 모습이 식물의 뿌리처럼 보이기도 하고요.”

 

배경이 완성되면 그 위에 수성 색연필로 스케치하고 채색을 시작합니다. 정석 그대로, 어느 과정 하나 허투루 하는 것이 없습니다. 원근감을 위해 명도별로 물감을 미리 조색해 준비하고 어두운색에서 점진적으로 밝게 쌓아나갑니다.

 

“보통 한 컬러당 10단계 정도로 나누는데, 작품 하나를 완성하는데 120색 정도를 사용합니다. 스케치한 후엔 채색 전에 번호를 써놓죠. '여기는 분홍색 8번, 여기는 분홍색 1번…' 이런 식이에요. 채색의 과정에서 즉흥은 거의 개입하지 않습니다.”

 

이 과정에서 안료의 입자 크기와 각 색의 마르는 속도도 모두 고려합니다. 이유는 단 하나, 내구성 때문입니다.

 

“작가는 백 년을 채 못 살지만 그림은 수백 년을 살 텐데, 혹시나 금이 가거나 깨지면 속상할 것 같아요. 또 그림을 사고 판다는 것은 시간과 시간을 바꾸는 일이잖아요. 누군가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번 시간과 제가 쪼그려 앉아 그림을 그렸던 시간, 서로의 시간을 인정해 주는 거죠. 제가 최선을 다해 그림을 그려야 찝찝하지 않더라고요.”


이후 작은 점으로 여백을 채워 마무리합니다. 작가는 전통적인 공기 원근법을 대신해 공간을 표현할 방법을 고심하다, 점·선·면 중 가장 작은 점으로 공기 중에 부유하는 에너지를 나타냈습니다.

 

점들은 때로는 빛의 입자가 되기도 합니다.

 

“우리는 사물을 본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사물에 반사된 빛을 보는 거죠. 문득 여름날 연꽃밭을 보는데 수면에 빛이 반짝반짝 비치더군요. 그 모습을 보고 내가 연꽃을 그리는 건가, 연꽃 사이의 빛을 그리는 건가 헷갈리더라고요.”

 

작가는 <도원의 꽃>에서 형상을 흐트러트리는 데 집중했습니다. 빛의 입자와 공기 입자들이 혼합된 것 같은 이 점들은, 언제든지 분해될 수도 있고, 여러 색으로 조합할 수도 있습니다. 배경색과 본색이 섞여 만드는 신비한 색조가 환상 속 ‘도원’을 연상하게 합니다.

도원의 꽃 100-1, 130.3x130.3cm, 캔버스에 아크릴, 2023. ⓒ김영진

김영진 작가 ⓒ김영진

자유소생도 10-13, 45.5x45.5cm, 캔버스에 아크릴, 2022. ⓒ김영진

Chapter 3.
염원을 담은 회화

 

#염원

화가의 일상은 완벽한 완성작 하나를 위해 수백 개의 도자기를 굽는 도공을 닮았습니다. 정성을 담아 구운 도자기를 깨뜨려야 하는 순간이 오더라도 그리기를 멈추지 않습니다.

 

“피카소가 남긴 몇만 점의 작품 중 유화는 2800여 점밖에 안 돼요. 조금인 것 같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1년에 50점씩 50년을 그려야 2500점을 그릴 수 있거든요. 사람의 수명이 짧은 탓도 있겠지만, 생각보다 한 사람이 평생 그릴 수 있는 양이 많지 않습니다. 그 안에서 좋은 작품을 남기려면 꾸준한 연구가 필요하죠.”

 

김영진 작가는 꾸준히 1년에 100점에서 120점씩을 그리고 있습니다. 단순하게 계산해 보면 꼬박 사흘에 한 점씩을 그리는 셈입니다. 하나의 그림을 완성하는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습니다. 김 작가는 “그림을 그릴 때는 마음속에서는 생각들이 불쑥불쑥 고개를 든다”고 말했습니다.

 

“마음의 형태가 흙탕물 같죠. 그러나 맑지 않다고 화내지 않습니다. 친구가 생각나면 전화도 하고 고민도 나눕니다. 깜빡한 친구를 위해 기도하기도 하고요. 염원의 시간이 깃들어 별것 아닌 꽃 그림에서도 세상이 보입니다.”


흔들리기 쉬운 마음의 균형을 잡으며 염원을 담은 그림. 작가는 자신의 그림이 자연과 같은 그림이 되기를 바랍니다.

 

“산에 올라가서 풍경을 내려다보면 처음에는 멋있다고 감탄하죠. 시간이 조금 지나면 멍하게 바라보게 됩니다. 그렇게 바라볼 수 있는 그림을 그리고 싶어요. 마음이 흔들릴 때 편안하게 볼 수 있는 그림을요.”





ARTTAG 변혜령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