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미술 #서양화 #회화 #유화 #아크릴 #자연 #아프리카 #동물
#art #painting #fineart #oilpainting #acrylic #nature #africa #animals
COEXISTENCE WITH NATURE
The memory of my family trip to the Serengeti, Africa, where I was instantly overwhelmed by the land and all the creatures that inhabit it, is still very much alive. It was not a long trip but the reason why this long-lasting impression and pleasure never left me was probably that I felt the paradise I dreamed of as a child in that grassland. Through my paintings, I wanted to talk about respect for life that should be protected and guarded. Maybe the most beautiful and abundant way to enjoy this life we are living is to let all life coexist together and live happily ever after.
안나영의 그림 속 동물들은 아프리카의 세모 나무 아래, 커다란 여행 가방과 종이배 위를 노닙니다.
때로는 명화 속 주인공이 되어 관람자와 눈을 맞추기도 하지요. 아름다운 공존을 그리는 작가, 안나영을 만났습니다.
My little gardens, 130.3x162cm, Oil on canvas, 2022. ⓒ안나영
Chapter 1.
아프리카에서 태초를 발견하다
Dancing with me, 100x80cm, Oil on canvas, 2020. ⓒ안나영
#아프리카 #자연
안나영은 살아있는 존재를 존경과 애정의 시선으로 담는 작가입니다. 그의 캔버스 안에는 모든 생명이 동등하게 존중받는 세계가 있습니다.
작가의 관심이 인간을 넘어 모든 생명을 향한 데에는 가족과 떠난 세렝게티 여행의 영향이 컸습니다. 아프리카는 남편이 해외 출장으로 자주 가던 곳. 캐리어 가득 채워 보낸 조각과 기념품을 보며 상상하던 그곳은 태곳적 자연이 살아 숨 쉬는 곳이었습니다.
“사실 세렝게티에는 별것 없어요. (웃음) 멋들어진 건물이 있는 것도 아니고 관광 명소가 있는 것도 아니에요. 자연만 있을 뿐이죠. 그런데 그곳에 들어선 순간 스스로가 하찮게 느껴지는 경이로움을 느꼈어요. ‘예술가가 왜 필요해? 이게 예술인데!’ 싶더라고요.”
마을이 어슴푸레 어둠에 잠기면 열리던 또 다른 야생의 세계, 멀리서부터 들려오는 생명의 소리와 대지의 위엄…. 그곳에서 작가는 자연을 누리고 있는 존재가 얼마나 당당할 수 있는지를 생생히 목격했다고 합니다. 열흘간의 여행을 마치고 작가는 아프리카에서 본 것들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제가 본 건 태초의 무엇이었던 것 같아요. 전에도 단발적으로 여행에서 영감을 얻곤 했지만, 세렝게티 여행 이후에 내 그림이 어디로 가야 할지 맥을 잡았죠.”
His garden, 130.3x162.2cm, Oil on canvas, 2021. ⓒ안나영
#공존
그렇게 동물과 사람, 자연이 함께 하는 낙원이 작가의 캔버스를 채우기 시작했습니다. 이곳에서 사람은 동물 탈을 쓰고 등장하고(<잠보 맘보> 시리즈), 동물들은 마치 사람처럼 행동합니다(<라이프> 시리즈). 작가는 의인화를 통해 공생의 메시지를 던지고 있습니다.
“사람과 동물은 생명이라는 점에서 그 삶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봐요. 제 작업에는 인간이 우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생명과 삶이 동등하게 소중하고 존중받아야 한다는 메시지가 깔려있죠.”
그러나 ‘공존’이라는 전 인류적 화두를 풀어내는 안나영의 붓끝은 경쾌해 보입니다. “제가 집중하는 소재들, 그것이 마음 아픈 이야기일지라도 어둡지 않게, 밝고 기쁘게 표현하고 싶어요.”
세자매, 37.9X45.5cm, Acrylic on canvas, 2021. <Life> 시리즈 ⓒ안나영
Chapter 2.
진실하게, 솔직하게, 그림일기
Home sweet home11, 53x45.5cm, Oil & Acrylic on canvas, 2022. ⓒ안나영
#삶
안나영의 작업은 삶과 긴밀하게 맞닿아있습니다. 작가는 자신의 작업을 ‘일기’라고 설명했습니다. 삶의 새로운 장마다 그의 그림도 변화했습니다. 푸른 모노톤이었던 학창 시절의 그림은 결혼과 함께 색을 입었고, 아이를 키우며 그림에는 동화적 코드가 풍성해졌습니다.
“그림이라는 게 정말 투명해서 제가 어떤 삶을 사느냐가 그대로 반영되더라고요. 그림을 그리면서 나도 몰랐던 나를 알아가곤 해요. 앞으로도 내가 경험한 것, 내가 아는 인생을 표현하는 진솔한 작가가 되고 싶어요. 고양이를 키우지 않으면서 고양이 얘기를 하고 싶지는 않다고나 할까요?”
삶이 문득 예술로 바뀌는, 일상 속 찰나에서 그의 작업은 시작합니다. <잠보 맘보>, <에덴> 시리즈는 가족과 함께 떠난 세렝게티 여행에서, 명화 패러디 연작 <Life>는 작가의 반려견이 앉아있는 모습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습니다.
“영감이 떨어지는 순간이 있어요. 그럴 땐 빠르게 스케치하거나 메모한 후 확장시켜 나가요. 제 작업은 현실을 재료로 하지만 날 것 그대로를 그리는 것은 아니에요. 삶을 이미지로 승화하는 것이 제 일이죠.”
Imagino_Le Petit Prince, 60.6x 72.7cm, Acrylic & Felt cutting on canvas, 2019. ⓒ안나영
작업 과정에서는 경계하는 것이 있다면 ‘손쉽고 빠르게 완성하는 것’입니다.
“채우는 것보다 비우는 게 훨씬 힘든 일이에요. 어떻게 힘을 뺄까 생각하다 물리적인 시간과 기법에 공을 들이기로 했죠. 일부러 손이 많이 가는 공정을 택하는 이유예요. 그림이 담백해지거든요. 손쉬운 것만 작가에게 득이 되는 건 아니라는 걸 느꼈죠.”
유화 작업을 좋아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습니다. 아크릴에 비해 작업 시간이 긴 유화는 작업의 과정 과정을 온전히 누릴 수 있는 재료입니다.
“유화는 마르는 과정에서 물감끼리 화학작용을 해요. 며칠 지나면 색이 달라지고, 그 위에 내가 색을 얹으면 또 색이 달라지고. 마치 물감이 살아있는 것 같아요. 그 과정에서 오는 쾌감이 있죠.”
그림 곳곳에는 설명하지 않으면 눈치채기 어려운 디테일들이 숨어있습니다. 작품의 깊이감을 더하는 배경은 바탕색 위에 색을 덮은 뒤 송곳으로 파내어 완성한 것입니다. 스텐실로 하나하나 찍어 올린 하트 문양은 평면적으로 보일 수 있는 그림에 회화적 입체감을 불러일으킵니다.
“밝고 동화적인 작품에 밀도를 만드는 과정이죠. 깊이와 산뜻함을 동시에 머금는 작업을 하는 게 제 목표거든요.”
You're my sunshine, 53x45.5, Acrylic on canvas, 2022. ⓒ안나영
Chapter 3.
숨쉬기를 위한 그리기
작업 중인 안나영 작가. 최근 그는 과거에 작업했던 <이매지노> 시리즈를 다시 꺼내 들었다. ⓒ안나영
안나영 작가는 그리는 일을 “숨 쉬는 것과 같다”고 말했습니다. 그만큼 자연스러운 일인 동시에 멈출 수 없는 일이라는 뜻일 겁니다. 대단한 사명감이나 야망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그림을 그만두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고 합니다. “아이가 어렸을 때, 작업은 ‘생존’이었어요. 붓을 놔버리면 저의 정체성이 사라질 것 같은 생각에 아이를 재우며 쪽잠을 자고 새벽 1시에 일어나 4~5시까지 작업하는 생활을 몇 년 반복했죠.”
안 작가는 미술 교육과 일러스트, 동화책 작업 등을 꾸준히 병행하며 세상과의 숨구멍도 열어놓고 있습니다.
“작가가 아닌 선생님으로, 엄마로 충실하게 살아갈 때 받는 에너지가 있어요. 그 에너지를 모아 작업하는 것 같고요. 일련의 일들은 삶에 예민하게 반응하기 위한 일종의 장치이기도 해요. 세상과 계속 호흡하고 소통할 수 있게끔 문을 열어놓는 거예요. 예술만 아는 작가가 되기는 싫거든요.”
어느덧 작가로 활동한 지 20여 년. 안나영 작가는 ‘이제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고 합니다.
“젊을 때에는 한 소재에 정착하지 못하고 계속 옮겨 다니는 것이 고민스러웠어요. 어떤 작가냐고 물으면 “이 작업은 이렇고, 저 작업은 이렇고….” 설명하는 제 모습에 생각이 많아지더라고요.
그런데 요즘 작업하다가 우연히 ‘이거 내가 옛날에 했던 거지’ 생각할 때가 많아졌어요. 시행착오라고 생각했던 것에서 연결고리를 발견하는 거죠. 열매 맺지 못한 과정들은 모두 버려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헛된 것이 아니었구나, 다 내 안에 있던 거구나.
이 모든 작업은 정류장 같은 거라고 봐요. 그리고 제가 타고 있는 버스는 직행이 아니라 순환버스인 것 같아요.”
My room, 91x91cm, Oil on canvas, 2022. ⓒ안나영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을 패러디한 ‘My room’(2022)는 치열했던 시기를 지나 꿈의 첫 번째 종착지에 다다른 현재를 기록한 작품입니다. 원작 속 화가의 모습은 토끼 가면을 쓴 작가의 모습으로 바뀌어 있습니다. 작가의 아틀리에를 연상시키는 소품들과 가족사진이 눈에 띕니다.
“내 작업실을 갖고 마음껏 작업하고 싶다는 생각을 오랫동안 해왔죠. 몇 년 전 작업실이 생겼어요. 아틀리에에서 그림을 그리고 종종 그림을 구경하러 오는 방문객들을 맞이하곤 해요. 제가 꿈꾸던 ‘그림으로 위로를 주고받는 삶’이죠.”
그림과 함께 나이 들어왔다는 안나영 작가는 앞으로 익어갈 자신의 그림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디테일에 강한 작가들이 노년이 되면 아이 같은 그림으로 돌아가는 것을 종종 보는데, 저는 그 지점이 정말 좋더라고요. 지금은 가늠할 수 없지만, 나이 먹은 제 그림이 어떨지 정말 기대돼요.”
ARTTAG 변혜령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