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미술 #공허 #색안경의진실 #감정의형상 #왜곡 #ContemporaryArt #Emptiness #TruthBehindColorLenses #EmbodimentOfEmotion #Distortion


DISTORTED PORTRAIT 


I decided to create.

 As an artist who sings of the times, I decide to condemn your irresponsibility.

혐오의 시대이자 인류 역사상 가장 평화로운 시대.

가장 진보한 시대이자 인공지능과도 겨뤄야 하는 무한 경쟁의 시대…. 

당신은 이 시대를 뭐라고 부르나요?

동시대의 우화를 그리고 있는 이동구 작가를 만났습니다.

ⓒ이동구, 기댈 곳, 2023_Acrylic on canvas_193.9cm*130.3cm

Chapter 1. 

행복을 묻다 


이동구 작가는 현대 사회의 단편을 고유한 관점으로 담는 작가입니다. 2017년 단체전을 시작으로 2021년 개인전 <매일 보던 별이 내 옆에 앉았어>로 화단에 등장한 그의 초기 작업은 공허의 정서가 주를 이룹니다. 당시 작가가 사로잡혀 있던 키워드는 ‘수많은 혼자들’. 


“건널목에 사람들이 한데 서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다고 해서 ‘함께’라고 생각하지 않잖아요. 수많은 ‘혼자’들이 뭉쳐있을 뿐이죠. 그 모습을 사회라고 부르고, 결국 삶의 모습도 그렇지 않나, 외로움이라는 건 인간의 숙명이라는 생각이 작가로서의 코어였죠.


작업을 위해 하루 중 많은 시간을 ‘공허함’에 대해 생각하다 보니 그 생각에 매몰되더라고요. 공허를 그려서 점점 공허함에 빠졌다면, 역으로 행복을 그리면 더 행복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행복’에 대해 그려보기로 했어요.”

ⓒ이동구

그렇게 시작된 작업이 2021년부터 선보인 작업 <행복에 관하여>입니다. 그 이름대로 작가는 다양한 종류의 행복을 수집하고 그 생리를 탐구했습니다. 마치 조립된 기계처럼 신체를 재배열하고, 다양한 은유적 표현을 사용한 이 시리즈는 작가 이동구의 이름을 알린 작업이기도 합니다. 


<행복에 관하여>를 통해 이성적이고 총체적으로 행복에 접근했다면, 동시에 작업한 <RAW> 프로젝트는 작가 본인의 감각에 집중해 행복을 이야기한 작업입니다. 


“작가라는 직업을 가질 거라고 결심한 순간부터 붓이 잘 나가지 않게 됐어요. 거대 담론을 다뤄야 할 것 같고, 엄청나게 깊은 작가노트를 써야 할 것 같고…. 그런데 제가 작가를 꿈꿨던 가장 큰 이유는 그림 그리는 게 즐거웠기 때문이었거든요.”


이동구 작가는 정제되지 않은 날 것의 고민과 감정을 그대로 쏟아내며 그리는 행위에서 느꼈던 즐거움을 찾으려 했습니다.


“작업할 땐 스케치 10개 중에 하나 괜찮은 게 나와요. 들여다보면서 골머리를 싸매고 있다가 ‘도저히 못하겠다’ 싶으면 캔버스를 꺼내 마구잡이로 그림을 그렸죠. 해소가 많이 되었던 것 같아요.”

ⓒ이동구

Chapter 2. 

늙어버린 피터팬의 초상

작업 중인 이동구 작가

이성과 감성으로 행복의 윤곽을 드러내는 작업을 해오기를 3년. 


“어느 날 버스를 타고 가는 길에 문득 행복에 대한 정의가 내려져 버렸어요. 행복은 기차의 종착지가 아니라 달리는 기차 안에서 보는 노을 같더라고요. 방향도 타이밍도 맞아야 하고, 그 잠깐의 순간이 지나면 또 다음 노을을 기다려야 하고… 


안정감의 그림자에는 지루함이 있을 테고, 자유의 뒤에는 불안감이 있는 것처럼 행복과 영원은 같이 갈 수 없다는 걸 깨달았죠. 큰 물음표가 해결되고 나니 작은 질문들은 다 부질없어졌어요.”


작업을 이끌고 가던 큰 질문이 사라지자 슬럼프가 찾아왔습니다. 


“재미없다는 기분이 가장 컸고요. 이미 답을 알고 있는 문제를 반복해 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죠. 작업에 번아웃이 와 친구에게 고민을 털어놓던 중에, 친구가 저에게는 요즘 세대에 대한 분노가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런 이야기를 하면 어떨까 해서 시작한 작업이에요.”

ⓒ이동구, 엄살쟁이, 2023, Acrylic on canvas, 91.0cm*91.0cm

새롭게 선보인 연작 <올드맨 피터팬>은 “관찰자이자 경험자”로서 작가가 현대 사회에 느낀 문제의식을 투영한 작업입니다. 특히 개인주의로의 시대적 이행이 불러온 사고와 행동 양식에 관심을 갖고 이를 조형적으로 풀어내고 있죠. 


“이전까지의 작업은 제가 갖고 있는 질문이나 답을 이미지로 구현했다면, 현재의 작업은 제가 문제의식을 느끼는 현상 그 자체를 담는 거예요. 비판이라고도 할 수 없어요. 어떤 논리나 해결책을 제시하는 건 아니거든요. 그냥 이 시대를 사는 예술가로서 이야기하는 것뿐이죠. ‘이때는 이랬어’ 하고요.” 


글이나 대화, 혹은 뉴스에서 아이디어를 얻는다는 작가는 틈날 때마다 재료가 될만한 문장이나 이미지를 메모합니다. SNS에 ‘회색 글씨’라는 이름으로 일부가 공유되고 있는 드로잉 노트 속 낙서들과 문장들을 계속 발전시켜가며 작업이 완성됩니다.

ⓒ이동구, 사자춤, 2023, Acrylic on canvas, 130.3cm*162.2cm

<사자춤>에는 이런 메모가 붙었습니다.


머리만 여럿인 꼴사나운 사자춤이 시작된다.

자신의 장점을 살리지 못한 역할은 
벌거벗은 사자의 서툰 추태로 바뀐다.

전라의 몸뚱이는 숭하기 짝이 없다.

자신에게 맞지 않는 역할에 
화려한 것만이 정답인 듯 행동한다.

그렇게 우린 다리도 몸통도 손도 잃고 머리만 넘쳐난다.

팔 다리 잘린 대가리가 멋들어지게 포효한다.


작가는 화려함만을 쫓는 피상적인 현대인의 모습을 조소하고 있습니다.  


“사자춤에서는 머리 역할을 하는 사람, 몸통 역할을 하는 사람, 꼬리 역할을 하는 사람이 있어야만 제대로 된 사자 한 마리가 완성돼요. 그런데 모든 사람들이 사자 머리가 되려고만 해요. 


각자 가지고 있는 재능이 있잖아요. 저는 트렌드를 빠르게 읽는 능력은 없어요. 일러스트를 그리거나 패션 관련 업계에서 종사하긴 어렵겠죠. 하지만 저는 ‘내 것’을 구축하는 능력은 있어요. 그건 다른 거거든요. 어떤 사람은 농업에, 어떤 사람은 제조업에 재능이 있을 수도 있는데 요즘은 모두 화려해보이는 것에만 집착하는 것 같아요.”


그가 전하는 메시지가 썩 듣기 편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하지만 그 찝찝함마저 즐기시라고 작가는 말합니다. 


“저는 추미(醜美)를 추구하는 사람이에요. 썩 내키지 않는 이야기를 아름답게 그리는 방식으로 작업하고 있어요. 예쁜 이미지를 보고 다가와 메시지를 들었을 때 찝찝함을 느낀다면, 그것마저도 제가 의도한 거라고 이야기하고 싶어요.” 


눈: 색안경을 벗었다는 착각

역동적인 필치와 과장되고 왜곡된 풍만한 신체는 원시적이고 신화적인 분위기를 풍깁니다. 고전문학의 메타포를 바탕으로 한 알레고리는 우화적인 공기를 더합니다. 여기에 문득 이질적인 것이 있다면, 사실적 표현의 눈입니다. 


“눈은 동화적인 제 그림을 현실과 연결하는 매개체예요. 그래서 가장 처음 잡히는 초점을 눈으로 강제하고 싶었어요. 또 그림을 감상하는 행위에는 생각보다 많은 심적 에너지가 소모되는데, 이를 줄이고 몰입을 돕고 싶었죠.


우리의 눈은 보통 가장 밀도가 높고 명도가 강한 곳에 초점을 맞추게 되어 있어요. 신체에서 가장 명도 대비가 강한 눈을 극대화하고 밀도를 집중시킴으로서 시선의 순서를 의도했습니다.”


또 하나의 관람 포인트가 있습니다. 작품 속 눈에는 모두 ‘색필터’가 씌워져 있죠. “저는 색안경을 낀다는 표현이 수정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직감과 직관은 벗어버릴 수 없는 것이거든요. 색안경을 벗으면, 또 다른 색안경이 나와요. ‘나는 색안경을 벗었다’는. (웃음) 결국 벗을 수 없는 안경인 눈에 우리는 이미 색을 가지고 사는 게 아닐까요.”

ⓒ이동구

작업 중인 이동구 작가

Chapter 3. 

행복을 묻다


20대를 지나는 동안 세상을 보는 그의 시선은 달라졌습니다. 공허에서 행복으로, 분노 혹은 부러움으로. 그때마다 그의 그림도 달라졌음은 물론입니다. 그러나 작가는 “이 일련의 과정이 투사적 환영이 아닌가 싶다”고 말합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분노, 시기, 질투는 어쩌면 환영에 가까울 수 있다고 생각해요. 내가 보고 싶은 대로 보고, 내가 끼워 맞추고 싶은 대로 끼워 맞추는 거죠. 


예를 들어 2030의 소비습관에 문제가 있다고들 하는데, 저도 동의해요. ‘나를 위한 선물’이라는 명목으로 과한 자기 연민을 합리화하지 않나 생각하기도 하고요. 아이러니하게도 실제 20대인 제 주변에는 그런 소비습관을 가진 사람이 거의 없어요. 


그럼 난 이 환영을 도대체 어디서 봤냐. 소셜 미디어에서, 뉴스에서 만들어낸 사회문제를 나 혼자만의 청사진을 그려놓고 투사시켜 만들어낸 환영이겠죠. 웃기게도 내 주변 일이라고 착각하기도 하는 거고요.” 

끊임없는 자기 의심과 확신이 반복되는 창작자의 삶에서 땅에 단단히 발을 딛으려는 의지로도 읽힙니다.


“작가에게는 자기 확신이 필요해요. 작업의 매 순간 스스로 결정하고 진행해야 하니까요. 창작 활동을 할수록 더 심해져요. 문득 ‘내가 옳고 그들이 틀려’ 확고하게 생각하고 있는 저를 발견할 때도 있고요. 


그 중간을 찾는 게 어려운 것 같아요. 확신이 너무 강해지면 독선이 되고, 잃으면 작업이 흔들리게 될 테니까요. 그래서 작가 이동구와 인간 이동구를 분리하려고 힘써요. 제가 예민해야 할 곳은 작업실 한정이죠. 작업에서는 이런 환영을 이용할 수 있지만, 현실로 돌아올 때는 스위치를 끄려고 노력해요.”

ⓒ이동구

“반짝 빛나는 별이 아니라 ‘오랫동안 우상향하는 작가, 
그러니까 선생님’이 꿈”이라는 그의 말이 떠오릅니다.

그가 갈 곳은 허공이 아니라 땅에 있습니다.

두 발로 걸어갈 수 있는 곳에.

#현대미술 #공허 #색안경의진실 #감정의형상 #왜곡

#ContemporaryArt #Emptiness #TruthBehindColorLenses

#EmbodimentOfEmotion #Distortion



DISTORTED PORTRAIT



I decided to create. 

As an artist who sings of the times, I decide to condemn your irresponsibility.


작업 중인 이동구 작가

혐오의 시대이자 인류 역사상 가장 평화로운 시대.
가장 진보한 시대이자 인공지능과도 겨뤄야 하는 무한 경쟁의 시대…. 
당신은 이 시대를 뭐라고 부르나요?
동시대의 우화를 그리고 있는 이동구 작가를 만났습니다.

ⓒ이동구, 기댈 곳, 2023_Acrylic on canvas_193.9cm*130.3cm

Chapter 1. 
행복을 묻다


이동구 작가는 현대 사회의 단편을 고유한 관점으로 담는 작가입니다. 2017년 단체전을 시작으로 2021년 개인전 <매일 보던 별이 내 옆에 앉았어>로 화단에 등장한 그의 초기 작업은 공허의 정서가 주를 이룹니다. 당시 작가가 사로잡혀 있던 키워드는 ‘수많은 혼자들’. 


“건널목에 사람들이 한데 서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다고 해서 ‘함께’라고 생각하지 않잖아요. 수많은 ‘혼자’들이 뭉쳐있을 뿐이죠. 그 모습을 사회라고 부르고, 결국 삶의 모습도 그렇지 않나, 외로움이라는 건 인간의 숙명이라는 생각이 작가로서의 코어였죠.


작업을 위해 하루 중 많은 시간을 ‘공허함’에 대해 생각하다 보니 그 생각에 매몰되더라고요. 공허를 그려서 점점 공허함에 빠졌다면, 역으로 행복을 그리면 더 행복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행복’에 대해 그려보기로 했어요.”

ⓒ이동구

ⓒ이동구

그렇게 시작된 작업이 2021년부터 선보인 작업 <행복에 관하여>입니다. 그 이름대로 작가는 다양한 종류의 행복을 수집하고 그 생리를 탐구했습니다. 마치 조립된 기계처럼 신체를 재배열하고, 다양한 은유적 표현을 사용한 이 시리즈는 작가 이동구의 이름을 알린 작업이기도 합니다. 


<행복에 관하여>를 통해 이성적이고 총체적으로 행복에 접근했다면, 동시에 작업한 <RAW> 프로젝트는 작가 본인의 감각에 집중해 행복을 이야기한 작업입니다. 


“작가라는 직업을 가질 거라고 결심한 순간부터 붓이 잘 나가지 않게 됐어요. 거대 담론을 다뤄야 할 것 같고, 엄청나게 깊은 작가노트를 써야 할 것 같고…. 그런데 제가 작가를 꿈꿨던 가장 큰 이유는 그림 그리는 게 즐거웠기 때문이었거든요.”


이동구 작가는 정제되지 않은 날 것의 고민과 감정을 그대로 쏟아내며 그리는 행위에서 느꼈던 즐거움을 찾으려 했습니다. 


“작업할 땐 스케치 10개 중에 하나 괜찮은 게 나와요. 들여다보면서 골머리를 싸매고 있다가 ‘도저히 못하겠다’ 싶으면 캔버스를 꺼내 마구잡이로 그림을 그렸죠. 해소가 많이 되었던 것 같아요.” 


 


작업 중인 이동구 작가

ⓒ이동구, 엄살쟁이, 2023_Acrylic on canvas_91.0cm*91.0cm

ⓒ이동구

Chapter 2.
늙어버린 피터팬의 초상

 

이성과 감성으로 행복의 윤곽을 드러내는 작업을 해오기를 3년. 


“어느 날 버스를 타고 가는 길에 문득 행복에 대한 정의가 내려져 버렸어요. 행복은 기차의 종착지가 아니라 달리는 기차 안에서 보는 노을 같더라고요. 방향도 타이밍도 맞아야 하고, 그 잠깐의 순간이 지나면 또 다음 노을을 기다려야 하고… 


안정감의 그림자에는 지루함이 있을 테고, 자유의 뒤에는 불안감이 있는 것처럼 행복과 영원은 같이 갈 수 없다는 걸 깨달았죠. 큰 물음표가 해결되고 나니 작은 질문들은 다 부질없어졌어요.”


작업을 이끌고 가던 큰 질문이 사라지자 슬럼프가 찾아왔습니다. 


“재미없다는 기분이 가장 컸고요. 이미 답을 알고 있는 문제를 반복해 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죠. 작업에 번아웃이 와 친구에게 고민을 털어놓던 중에, 친구가 저에게는 요즘 세대에 대한 분노가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런 이야기를 하면 어떨까 해서 시작한 작업이에요.”


새롭게 선보인 연작 <올드맨 피터팬>은 “관찰자이자 경험자”로서 작가가 현대 사회에 느낀 문제의식을 투영한 작업입니다. 특히 개인주의로의 시대적 이행이 불러온 사고와 행동 양식에 관심을 갖고 이를 조형적으로 풀어내고 있죠. 


“이전까지의 작업은 제가 갖고 있는 질문이나 답을 이미지로 구현했다면, 현재의 작업은 제가 문제의식을 느끼는 현상 그 자체를 담는 거예요. 비판이라고도 할 수 없어요. 어떤 논리나 해결책을 제시하는 건 아니거든요. 그냥 이 시대를 사는 예술가로서 이야기하는 것뿐이죠. ‘이때는 이랬어’ 하고요.” 


글이나 대화, 혹은 뉴스에서 아이디어를 얻는다는 작가는 틈날 때마다 재료가 될만한 문장이나 이미지를 메모합니다. SNS에 ‘회색 글씨’라는 이름으로 일부가 공유되고 있는 드로잉 노트 속 낙서들과 문장들을 계속 발전시켜가며 작업이 완성됩니다.

ⓒ이동구, 사자춤, 2023, Acrylic on canvas, 130.3cm*162.2cm

ⓒ이동구

<사자춤>에는 이런 메모가 붙었습니다. 


머리만 여럿인 꼴사나운 사자춤이 시작된다.

자신의 장점을 살리지 못한 역할은 벌거벗은 사자의 서툰 추태로 바뀐다.

전라의 몸뚱이는 숭하기 짝이 없다.

자신에게 맞지 않는 역할에 화려한 것만이 정답인 듯 행동한다.

그렇게 우린 다리도 몸통도 손도 잃고 머리만 넘쳐난다.

팔 다리 잘린 대가리가 멋들어지게 포효한다.


작가는 화려함만을 쫓는 피상적인 현대인의 모습을 조소하고 있습니다.  


“사자춤에서는 머리 역할을 하는 사람, 몸통 역할을 하는 사람, 꼬리 역할을 하는 사람이 있어야만 제대로 된 사자 한 마리가 완성돼요. 그런데 모든 사람들이 사자 머리가 되려고만 해요. 


각자 가지고 있는 재능이 있잖아요. 저는 트렌드를 빠르게 읽는 능력은 없어요. 일러스트를 그리거나 패션 관련 업계에서 종사하긴 어렵겠죠. 하지만 저는 ‘내 것’을 구축하는 능력은 있어요. 그건 다른 거거든요. 어떤 사람은 농업에, 어떤 사람은 제조업에 재능이 있을 수도 있는데 요즘은 모두 화려해보이는 것에만 집착하는 것 같아요.”


그가 전하는 메시지가 썩 듣기 편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하지만 그 찝찝함마저 즐기시라고 작가는 말합니다. 


“저는 추미(醜美)를 추구하는 사람이에요. 썩 내키지 않는 이야기를 아름답게 그리는 방식으로 작업하고 있어요. 예쁜 이미지를 보고 다가와 메시지를 들었을 때 찝찝함을 느낀다면, 그것마저도 제가 의도한 거라고 이야기하고 싶어요.” 


눈: 색안경을 벗었다는 착각

역동적인 필치와 과장되고 왜곡된 풍만한 신체는 원시적이고 신화적인 분위기를 풍깁니다. 고전문학의 메타포를 바탕으로 한 알레고리는 우화적인 공기를 더합니다. 여기에 문득 이질적인 것이 있다면, 사실적 표현의 눈입니다. 


“눈은 동화적인 제 그림을 현실과 연결하는 매개체예요. 그래서 가장 처음 잡히는 초점을 눈으로 강제하고 싶었어요. 또 그림을 감상하는 행위에는 생각보다 많은 심적 에너지가 소모되는데, 이를 줄이고 몰입을 돕고 싶었죠.


우리의 눈은 보통 가장 밀도가 높고 명도가 강한 곳에 초점을 맞추게 되어 있어요. 신체에서 가장 명도 대비가 강한 눈을 극대화하고 밀도를 집중시킴으로서 시선의 순서를 의도했습니다.”


또 하나의 관람 포인트가 있습니다. 작품 속 눈에는 모두 ‘색필터’가 씌워져 있죠. “저는 색안경을 낀다는 표현이 수정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직감과 직관은 벗어버릴 수 없는 것이거든요. 색안경을 벗으면, 또 다른 색안경이 나와요. ‘나는 색안경을 벗었다’는. (웃음) 결국 벗을 수 없는 안경인 눈에 우리는 이미 색을 가지고 사는 게 아닐까요.” 

ⓒ이동구

작업 중인 이동구 작가

Chapter 3. 

투사적 환영의 그리기


20대를 지나는 동안 세상을 보는 그의 시선은 달라졌습니다. 공허에서 행복으로, 분노 혹은 부러움으로. 그때마다 그의 그림도 달라졌음은 물론입니다. 그러나 작가는 “이 일련의 과정이 투사적 환영이 아닌가 싶다”고 말합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분노, 시기, 질투는 어쩌면 환영에 가까울 수 있다고 생각해요. 내가 보고 싶은 대로 보고, 내가 끼워 맞추고 싶은 대로 끼워 맞추는 거죠. 


예를 들어 2030의 소비습관에 문제가 있다고들 하는데, 저도 동의해요. ‘나를 위한 선물’이라는 명목으로 과한 자기 연민을 합리화하지 않나 생각하기도 하고요. 아이러니하게도 실제 20대인 제 주변에는 그런 소비습관을 가진 사람이 거의 없어요. 


그럼 난 이 환영을 도대체 어디서 봤냐. 소셜 미디어에서, 뉴스에서 만들어낸 사회문제를 나 혼자만의 청사진을 그려놓고 투사시켜 만들어낸 환영이겠죠. 웃기게도 내 주변 일이라고 착각하기도 하는 거고요.” 


끊임없는 자기 의심과 확신이 반복되는 창작자의 삶에서 땅에 단단히 발을 딛으려는 의지로도 읽힙니다.


“작가에게는 자기 확신이 필요해요. 작업의 매 순간 스스로 결정하고 진행해야 하니까요. 창작 활동을 할수록 더 심해져요. 문득 ‘내가 옳고 그들이 틀려’ 확고하게 생각하고 있는 저를 발견할 때도 있고요. 


그 중간을 찾는 게 어려운 것 같아요. 확신이 너무 강해지면 독선이 되고, 잃으면 작업이 흔들리게 될 테니까요. 그래서 작가 이동구와 인간 이동구를 분리하려고 힘써요. 제가 예민해야 할 곳은 작업실 한정이죠. 작업에서는 이런 환영을 이용할 수 있지만, 현실로 돌아올 때는 스위치를 끄려고 노력해요.”

“반짝 빛나는 별이 아니라 ‘오랫동안 우상향하는 작가, 그러니까 선생님’이 꿈”이라는 그의 말이 떠오릅니다.
그가 갈 곳은 허공이 아니라 땅에 있습니다.
두 발로 걸어갈 수 있는 곳에.

ⓒ이동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