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상미술 #바람시리즈 #자연과인공 #규칙과불규칙
#AbstractArt #WindSeries #NaturalToArtificial
BARAM SERIES
'Baram' in Korean languae has two meanings; flow of air (wind) or strong wish for something to happen. Baram Series illustrates wind in a simple two-dimensional form and various colors. The series also wishes to calm any harsh wind we face in our life and hopes wind to be faced carry luck.


<Baram 28>
시인은 말했습니다.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여기 직사각의 울타리 안에
흐르는 바람을 잡아놓은 작가가 있습니다.
희망의 바람을 그리는 작가, 이건우를 만났습니다.

ⓒ이건우, Baram 178, Mixed Media on Pannel, 90.9cm x 72.7cm, 2023.
Chapter 1.
<KIWA>:
우연의 바람을 타고
목공 조형으로 미술계에 데뷔한 이건우 작가의 이력은 조그만 가구 공방에서 시작합니다. “나를 찾는 시간의 연속”이었다는 20대가 절반 정도 지났을 즈음이었습니다.
“20대 중반까지는 제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어요. 20살이 되자 친구들은 대학도 가고, 군대도 가고, 취업도 하는데 저는 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겠더라고요. 20년이나 살았는데 아직도 내가 뭘 잘하고 좋아하는지 모르는 게 너무 수치스럽고 힘들었어요. 그걸 찾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어요.”
스스로를 온전히 알고 싶어 무모하리만큼 다양한 경험과 낯선 환경에 자신을 던졌습니다. 목공예를 시작하게 된 것도 비슷한 이유에서였습니다. 친구가 우연히 던진 말에 수업을 듣게 됐죠.
“’가구나 한 번 만들어 보’라는 친구의 지나가는 말이 생각나 젊은 목수들을 소개하는 책을 찾아 읽었어요. 너무 매력 있더라고요. 운이 좋게 책에 소개된 작가 중 한 분이 아카데미를 운영하고 계셨어요. 인원이 꽉 차있어서 6개월을 기다려 수업에 들어갔죠. 시작하자마자 ‘내 길이다’ 이런 마음은 없었고요. 그냥 이 과정을 잘 마쳐야겠다는 생각이었어요.”
수업은 단순히 가구를 만드는 방법만을 가르쳐 주지 않았습니다. 이건우 작가는 그곳에서 ‘작가 정신’을 배웠다고 이야기합니다.
“가구를 배우러 간 거였는데, ‘작품’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계속하시는 거예요. 커리큘럼의 마지막 6개월은 내 작품을 만드는 과정이었는데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았어요. 그 스트레스가 너무 행복하더라고요. 그전까지는 그런 종류의 스트레스를 받아본 적이 없었거든요. 더 잘하고 싶고, 완성해 내고 싶다는…. 살아있다고 느껴지더라고요.”
<KIWA> Series
2017년 선보인 <KIWA> 연작은 목재의 여러 단면 중 나이테의 무늬가 그대로 노출되는 마구리면을 활용해 이를 켜켜이 쌓아 올린 조형 작업입니다.
반달 모양의 나이테에서 기와의 모양을 찾아낸 작가는 자연이 만들어낸 기와 무늬를 한 장 한 장 쌓아 커다란 기왓장을 만들었습니다.

ⓒ이건우, <KIWA> 연작, 2017.

작업 중인 이건우 작가
“나무가 자라는 과정에서 날씨나 성장 속도에 따라 나이테의 간격이 달라지는데, 그 무늬가 아름다워 사용해 보고 싶었어요. 당시 작업이 크기가 있어 친구들이 새벽에 와서 날라주는 등 주변의 도움을 많이 받았는데, 보잘것없고 깨지기 쉬운 기왓장이 여러 개 쌓이면 지붕이 되어 기능이 생기는 모습이 사람 사는 모습과 똑같다고 느껴지더라고요.
연약하고, 보잘 것 없는 20대 중반을 보내고 있었는데 여러 사람과 어울리면서 합동하면 더 단단한 것, 더 큰 것을 만들 수 있다는 걸 깨달은 거죠. 그걸 작품에 담고 싶었습니다.“
이후 국립현대미술관 청주, 경인미술관 등에서 관람객들과 만나며 가능성을 인정받던 작가는 돌연 1년간의 공백 이후 평면 회화 <바람> 연작을 발표합니다.


작업 중인 이건우 작가

<Baram 204>
Chapter 2.
평면: 터널의 끝에서
불어온 바람
평면 작업으로의 전환은 작가에게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습니다. 빌려 사용하던 지인의 작업실이 문을 닫으면서 넓은 공간이 필요한 목공 작업을 할 수 없게 된 것. 그러나 작업을 중단하자 부재는 존재를 증명한다는 시인의 말처럼 창작에 대한 열망은 뚜렷해졌습니다.
“그때 에어컨 공사 일을 했거든요. 틈날 때마다 배관을 구부려서 뭔가를 만들고 있는 저를 발견하고는 ‘나 곧 죽어도 창작 활동을 해야겠구나. 돈을 당장 벌지 못해도 나는 무언가를 만드는 사람이어야 하는구나’ 생각했죠.”
그는 나무라는 소재를 버리기로 과감히 결정합니다. 재료나 소재에 국한될 필요가 없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방 한편에서 시작할 수 있는 평면 작업을 선택했죠.
“작업하자마자 난관에 부딪혔어요. 어찌 보면 당연한 게 전에 그림을 접한 적이 한 번도 없어요. 물감 종류는 물론이고 붓은 어떻게 잡는지, 조색은 어떻게 하는 건지 몰랐죠. 모든 게 시행착오였어요.”

ⓒ이건우, Baram 41-43, Mixed Media on Canvas, 162cm x 130cm, 2020.
어둠 속에서 손으로 더듬어 길을 찾듯 작업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작가의 대표작 <바람>이 탄생한 것도 그 즈음입니다.
“SNS에 공유한 작업 과정을 보고 영상 촬영을 하고 싶다는 연락을 받았어요. 작업실이 없어 친구 아버지의 공방을 빌려 힘들게 촬영했죠. 작업하는 모습을 찍으려고 물감을 아무렇게나 짜고 붓으로 슥 긋는데, 그러데이션 무늬가 나오는 거예요. 순간 ‘이거다’ 싶었습니다.”
붓이 이동하면서 남긴 흔적을 보자 작가의 마음에도 바람이 불었습니다.
“(당시엔) ’바람’이라는 단어는 없었지만 무언가 스쳐 지나가고 흘러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어요. 이 이미지를 나만의 작품으로 만들 수 있겠다는 막연한 확신이 있었죠. 무작정 이 형태를 다듬어보자고 생각했죠.”
운명 같았던 당시의 붓질을 재연하기 위해 다양한 재료와 수십 개의 붓을 사용했습니다. 가장 먼저 머릿속에 떠오른 단어는 ‘풍파’였습니다. 모든 것이 막막하고 낙심한 상황에서 우연찮은 계기로 바람의 형태를 포착한 순간부터 작가는 ‘풍파는 지나간다’는 문장을 붙잡고 자신의 상황을 되짚으며 작업을 발전시켜나갔습니다.
“유심히 관찰하면서 이 물감이 만들어낸 줄, 이게 뭘까. 바람 같다는 생각을 했죠. 곱씹어 볼 수록 제 상황과 맞더라고요. 이 풍파와 역경이 지나가고 희망의 바람이 불어올 거라는 믿음과 소망은 저에게도 필요한 거였거든요.”
작가는 직사각형의 울타리를 경쾌하게 흐르는 파스텔톤의 물감으로 그만의 바람을 만들었습니다. 이후 ‘무언가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라는 의미를 더해 <바람> 시리즈를 세상에 내놓았습니다.

ⓒ이건우
Chapter 3.
보이지 않는 바람을
그리는 일
보이지 않는 바람을 어떻게 그릴 수 있을까요? 대개는 바람에 흔들리는 사물을 그릴 겁니다. 흔들리는 옷자락과 춤추는 나무, 성난 파도는 자연스럽게 살갗에 닿는 차가운 공기와 귀 옆을 지나가며 내는 소리를 상상하게 합니다.
하지만 <바람> 연작에서 바람은 매개체를 통해 간접적으로 등장하지 않습니다. 작가는 자유롭고 비정형적인 바람을 가장 규칙적이고 정형적인 형태로 등장시키며 바람 그 자체를 그렸습니다.
작가는 자연적인 것과 인위적인 것, 불완전함과 온전함, 규칙적인 배열과 불규칙한 적층 등 대비되는 것을 한 작품 안에 함께 배치하며 세계의 복잡성을 단순한 형태로 드러내 왔습니다. 그의 작업에서 상반된 요소들은 충돌하지 않고 조화를 이룹니다.
“창작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그림을 하던, 조형을 하던, 미디어아트를 하던 장르 이전에 제 작업의 중심을 잡아주는 근간된 개념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그건 가장 ‘나다운 것’이어야 하고요.
나의 장점과 단점을 쭉 써 내려가다 보면, 양쪽에 똑같은 단어가 들어갈 때가 있어요. 제 친절이 누군가에게는 좋게 받아들여질 수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부담일 수도 있듯이요. 나를 다 벗겨내고 보니 ‘나는 이중적인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의 작업에서도 쉽게 상반된 요소의 공존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기와>에서는 랜덤한 나무의 무늬를 1mm의 오차 없이 잘라 붙이고 배열해 인위적인 규칙을 만들어냈습니다.
자유로움의 대명사인 바람은 <바람> 연작에서 고정된 형태로 표현된다. “하지만 이 정형화된 그림의 옆면을 보면 물감이 흘러내린 자국, 붓이 지나간 흔적이 있어요. 그 아이러니를 좋아해요.”
전시에서 액자를 사용하지 않는 것도 이런 아이러니를 감추고 싶지 않은 작가의 의도입니다. 컬렉터들에게도 액자를 추천하지 않는다고.
나를 뜯어보면서 스스로를 인정하게 됐죠. 싫고 좋고 할 수가 없는 게, 어떡하겠어요. 이게 저인데, 바꿀 수도 없고. (웃음) 저만 그런 줄 알았는데 많은 사람들이 다 이중적인 모습을 갖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 모양이 다 다를 뿐이지.”

<Baram 221>
Chapter 4.
가장 인공적이고
자연스러운 바람을 찾아서
어느덧 작가는 200점이 넘는 ‘바람’을 그렸습니다. 손과 눈에 익은 작업을 5년째 이어오고 있지만 그 안에는 늘 예상치 못한 기쁨이 있다고 작가는 말합니다.
“반복된 행위를 오랫동안 하다 보면 설렘은 무뎌지지만, 그 가운데서 새로운 감정을 발견해요. 편안함도 있고, 안정감도 있고….
아직 표현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요. 이 색도 쓰고 싶고, 저 색도 쓰고 싶고, 이렇게 형태를 바꿔보고도 싶고. 이 오묘한 변주를 다 해보고 싶어요.”
연속성을 가지면서도 변화를 주는 그 범주를 찾는 게 가장 당면한 과제입니다. 늘 머릿속에서 반 박자, 반 음계를 밀고 당기며 신선한 이미지를 찾죠.
캔버스 위에 직접 만든 직사각 틀을 세워보며 구도를 잡습니다. “이미지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균형이에요. 시각적으로 가장 보기 좋으면서도 편안한 배열을, 그리고 신선하면서도 조화로운 색상을 추구합니다.”
특히 율동하는 색을 표현하기 위해 컬러칩이 다양하고 조색이 용이한 페인트와 아크릴을 섞어 사용합니다.
“처음엔 아크릴 물감을 사용했는데 물감의 색이 너무 한정적인 거예요. 물감끼리 섞는 방법도 모르고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던 찰나 과거 에어컨 일을 할 때 페인트 조색 심부름하던 게 떠오르더라고요. 지금은 아크릴과 페인트를 섞어 써요. 아크릴은 캔버스에 스며드는 양이 많지만, 페인트는 아사천에 잘 스며들지 않아 바르기 수월해요.”
다양한 재료를 사용하는데 거침없는 것은 목공예의 영향입니다. 재료뿐 아니라 여러 가지 공구와 마감재 등을 끊임없이 접목해 보고 있습니다.
“(목공 현장을) 많이 따라다니며 일한 덕분에 물성에 대한 이해도가 폭넓어진 것 같아요. 붓질에서 만족하지 않고 작업을 확장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 중이에요.”

ⓒ이건우
그러다 모든 것이 꼭 맞춘 듯한 작품을 완성하면 두고두고 작업을 이어갈 동력이 됩니다.
“남들이 생각하지 못한 것을 내가 표현했을 때 엄청난 카타르시스라고 할까, 벅찬 기분이 있어요. <바람> 시리즈도 그랬고, 과정 중에 있는 새로운 작업들도 그렇고요. ‘이건 세상에 공개하고 싶지 않다. 나만 알고 싶은데’ 할 정도로요. (웃음)
작업실에서 혼자 그림을 그리는 시간에는 누군가 와서 내가 잘하고 있다고 이야기해 주지 않거든요. 늘 스스로 의심스럽죠. 작품을 완성한 후의 만족감, 성취감, 자신감이 큰 힘이 돼요. 내 눈에 이렇게 만족스럽다면 세상 모든 사람은 아니더라도 나와 같은 취향, 생각,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이 작품에 공감하고 좋아해 줄 거라는 확신이 들죠.”
오늘도 이건우 작가는
작업실에서 네모난 희망을 그립니다.
그의 바람이 당신의 등을 살포시 밀어주는
훈풍이 되기를 바라면서.

ⓒ이건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