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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NK PLANET
BERRYLAND
Artist Berry Kim is a Berryland princess who came from Berryland to make boring Earth happy. Berryland, her home and the setting of her friends, is her planet next to Earth. Unlike the materialistic world that is becoming standardized, it is a place with its own charm and life. Here, it represents that everyone exists as ‘I’, remaining loyal to their own desires.
여기 당신의 회색빛 일상에 화려한 색을 되돌려주러 온 사람이 있습니다. 마치 만화나 애니메이션 속 즐거운 상상처럼 그의 시선이 머문 곳에는 물건들이 생명을 얻고, 칙칙한 빌딩 숲 속 반복되는 일상은 즐겁고 재미난 모험이 되죠. 작가 베리킴을 만났습니다.
Chapter 1.
베리랜드: 나 자신으로 충분한 세상
베리킴 작가는 자신의 정체를 “지루한 지구를 행복하게 만들러 베리랜드에서 찾아온 베리랜드 공주님” 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의 고향이자 작업의 배경인 베리랜드는 지구 옆에 자리한 핑크 행성. 획일화되어 가는 물질만능주의 세상과는 다르게 자기만의 매력과 개성이 살아 숨 쉬는 곳입니다. 이곳에서는 모두가 자기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채, 그저 ‘나’로 존재하죠.
베리랜드는 종종 주위 사물에 캐릭터를 부여하던 작가의 유년기 습관에서부터 출발합니다.
“저는 보수적인 집안에서 평범한 교육을 받으며 자랐어요. 돌아보면 ‘아티스트 생명체’로 태어났는데, 당시엔 주변에 나 같은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그걸 드러내기보다는 사회가 요구하는 기준에 나를 맞춰왔고요."
ⓒ베리킴 작가
"특히 어릴 땐 누군가와 어울리는 게 제일 중요한데, 그땐 누가 엉뚱한 발언이나 행동을 하면 철저히 외면받잖아요. 다행히 기질이 활발하고 유쾌해서 내 말을 이해 못 해준다고 우울해하지 않고, 어떤 집단이든 그들이 원하는 언행을 하면서 잘 어울렸어요. 하지만 한편으로는 마음속에서는 저만의 세상을 창조하며 그 안에서 행복해했던 것 같아요.”
이런 습관은 엄격한 기준을 들이대는 사회에서 벗어나는 일탈의 방법이기도 했습니다. 상상 속에서 욕망과 취향을 부여받은 사물은 현실로 돌아왔을 때 조금 더 흥미로운 존재가 되어 있었죠.
일상적 사물에 서사와 성격을 부여하는 작업은 런던 유학 시절 더욱 구체화됐습니다.
작업 중인 베리킴 작가
베리킴,
런던으로 떠나다
런던 유학은 계획에 없던 일이었습니다. 당시 베리킴 작가는 SADI에서 커뮤니케이션 디자인을 공부하고 상업 디자이너로 커리어를 쌓아나가고 있었습니다. 그가 가진 선택지 중 가장 합리적이고 실리적인 선택이었죠.
“워낙 창조적인 일, 계획한 아이디어를 완성하는 일에 열정이 많아 상업적인 일도 성취감을 갖고 잘 해냈어요.”
그러나 아무리 사회가 내놓은 ‘정답’이라는 틀에 나를 넣고 맞추려고 해도 끓는 물이 주전자 뚜껑을 들어 올리듯 들끓는 자아는 불쑥불쑥 튀어나오곤 했습니다.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익숙해지고 뻔해지는 시점이 왔다”고 작가는 말합니다.
“야근하며 일하고, 퇴근하면 툴 공부하고, 최선을 다해 사는데 껍데기 같은 느낌이 들더라고요. 이렇게 열심히 사는데도 채워지지 않는 어떤 욕망이 있는 것 같았어요.”
그때 우연히 영국으로 유학을 떠난 일러스트레이터의 책을 접했습니다. 책을 읽으며 ‘드디어 나 같은 사람을 찾았다’는 걸 직감으로 알 수 있었다고. 그의 말을 빌리자면 “그렇게 막연히 커다란 본능이 이끄는 대로” 영국으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런던에서의 생활을 작가는 ‘자아가 폭발하는듯한 경험’이라고 설명합니다.
“런던에 오기 전, 저는 한국 사회의 획일화에 익숙해져 있었어요. 외모, 성격, 옷차림, 말투, 직업, 집, 차, 친구, 학교 등 모든 것이 어떤 기준에 들지 않으면 도태되거나 멋진 사람이 아니라고 여겨지는 사회에요.
그래서 저도 저 자신을 연구하기보다는 남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어설프게 노력했던 것 같아요. 그래야 학교와 회사에서 소통하기 쉬웠고요.
그런데 런던에 오고 나서는 다양한 삶과 개성을 존중하는 사회가 주는 좋은 에너지를 느끼면서, (과거의 생각이) 아주 잘못되었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 뒤로 저 자신을 드러내는 것에 자신감을 갖고 제 세계관이 깊어지게 됐고요. "
특히 자유로운 런던의 분위기는 작가에게 무한한 영감이 되어주었습니다. “거리에서 아티스틱한 사람들을 보면서 ‘내가 찾던 게 저거였구나’ 느꼈어요. 이렇게 다양한 삶들이 공존할 수 있다는 걸 알았죠.
학교에서도 그랬어요. 제가 뭘 하든 선생님과 친구들이 너무 좋아하는 거예요. 특이한 거 입고 가면 너무 좋아하고, 그럼 난 더 특이한 거 입고 가고… (웃음) 거기서 제 자아가 무럭무럭 컸던 것 같아요.”
차곡차곡 쌓아온 작가의 세계관이 ‘베리랜드’라는 이름을 갖게 된 것도 영국 유학 시절, ‘베리랜드’라는 지명의 동네를 우연히 발견하면서부터입니다.
“이건 운명이다! 살아봐야 된다, 이거는. 그래서 3개월 살았어요. 사실 별로였어요. 하하. 근데 그 낭만을 즐겼어요. 학교까지 가는 K2 to BERRYLANDS 버스를 타고 다니면서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펼쳤죠. ‘너무 소름 돋는다, 어떡하지.’ 하면서. (웃음)”
Hot Berry Cat ⓒ베리킴
Luxury DDonald ⓒ베리킴
Chapter 2.
지루한 세상을 비틀다
고국으로 돌아온 베리킴 작가는 2016년 런던에서부터 이어진 작업 <Fake Life>를 통해 한국 아트씬에 데뷔합니다. 사회가 정의한 ‘성공’으로 자신을 포장하며 제 모습을 잃어가는 모습을 화려한 색감과 키치한 표현 아래 비틀어 표현한 작업입니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성공한 삶’이 무엇인지 정해져 있었던 것 같아요. 대기업에 다니고, 전문직을 가진 배우자와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좋은 차를 몰고, 좋은 아파트에 사는. 그걸 원하고, 실제로 그렇게 살면 다행인데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모두 그런 척을 하는 것이 싫었어요.”
엄격한 사회의 잣대는 작가의 조소 한 방에 그 권위를 잃고 해체됐습니다.
이후 사회를 향해 있던 베리킴의 시선은 작가의 내면으로 그 방향을 틀었습니다. 본격적으로 <베리랜드> 작업을 선보이기 시작한 건데요.
“(이전 작업이) 전 재미있었는데, 사람들이 너무 어둡게 보더라고요. 찔려서 그랬을 수도 있고요. (웃음) 그럼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내 세계를 그려보자, 해서 베리랜드를 그리기 시작했죠.”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로 마음먹은 후 처음 작업한 ‘RED VACATION’은 고양이와 집에서 휴가를 보내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그린 작품입니다. 맥주, 고양이, TV 등 작가가 좋아하는 것으로 가득 채워진 집은 바빠서 가지 못한 휴양지를 대신해 최고의 휴가지가 됩니다.
대칭을 이루는 오른쪽 캔버스에는 작가가 상상한 옆집의 모습이 담겼습니다. 작가의 시선으로 재탄생한 소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등장인물들이 방을 점령한 모습이죠.
Red Vacation, 2016 ⓒ베리킴
베리랜드를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면서, 일상과 취향, 더 나아가 작가의 욕망이 작업에 적극적으로 반영되기 시작했습니다.
고양이 캐릭터 ‘베리캣’에는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고, 멋있는 상대를 보고 싶고, 섹시한 몸을 가지고 싶고, 멋있는 사람과 어울리고 싶은 작가의 원초적인 욕망이 그대로 투영되어있습니다.
실제로 입을 수 없는 옷과 살 수 없는 물건, 가질 수 없는 기회도 베리랜드에서는 실재가 됩니다.
“일상이 지루하게 느껴질 때가 있잖아요. 이 재미없는 세상에서 회복하고, 주변을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 상상을 하는 거예요. 그래서 제 그림에는 욕망이 많이 반영되어 있어요.”
Hot Berry Cat ⓒ베리킴
디지털과 캔버스를
오가는 동화
캔버스 안을 꽉 채운 수많은 캐릭터와 이야기는 어떻게 생겨날까요?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일상을 관찰하는 것입니다.
“지루함 속에서 행복을 찾기 위해 유쾌한 시선으로 주위를 관찰해요. 본능적으로 캐릭터를 드로잉하는 편이에요.”
한 장에 하나씩 드로잉한 캐릭터를 디지털로 옮겨 세부 작업을 시작합니다. 펜 툴을 사용해 캐릭터들의 디테일과 색을 잡고, 한 곳에 모아놓죠.
이렇게 모아놓은 다양한 개성의 캐릭터들이 방을 만들고, 집을 만들고, 세상을 만들어가며 작품이 완성됩니다.
이후 디지털 이미지를 캔버스와 합판을 사용해 물성을 가진 입체로 만들어내는데요. 여러 층을 가진 작품에서는 팝아트나 애니메이션의 운동성이 느껴집니다.
“디지털 작업을 캔버스로 옮기는 게 너무 재미없었어요. 네모난 모양도 싫었고요. 작업의 선을 따서 모양을 내고, 레이어를 주기 시작했죠. 저에겐 입체감이 있어야 (작업에) 영혼이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Grandfather wearing Gucci,2023.ⓒ베리킴
Chapter 3.
베를린에서 넓어지다
2019년의 첫날, 베리킴 작가는 베를린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베를린 아티스트 레지던시에 입주하기 위해서였죠.
“서울에서 작가 생활을 시작하게 되면서 답답하고 허무함을 크게 느끼는 시기가 있었어요. 아무런 연고도 없는 곳이었지만 무작정 지원해 떠나게 됐죠. 본능적인 이끌림 때문에 한 막연한 선택이었어요.”
그러나 설렘을 안고 도착한 베를린의 첫인상은 기대와 180도 달랐습니다. 신년을 맞은 가게들은 모두 문을 닫았고, 거리와 건물은 낡고 더러웠습니다.
“여기서 내가 3개월 동안 지낼 수 있을까? 집에 다시 돌아가야 하나? 생각할 정도로 당황스러웠어요. 그런데 일주일이 지나니 엄청난 신세계가 펼쳐지더라고요.”
작가는 곧 역사와 전통, 자유로운 예술의 도시 베를린에 마음을 뺏기고 맙니다. <베릴린>은 마법 같은 도시 베를린을 기록한 작가의 일기와 다름없는 작업입니다. 후추통, 길거리의 간판, 빈티지 패션숍에 놓인 소품…. 그때그때 느꼈던 사람, 문장, 풍경이 모두 작업의 소재가 되었죠.
“(베를린에서) 개성 있고 욕망에 충실한 사람들을 만났어요. 자신의 욕망에 당당하고, 그대로 보여지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이죠. 그 당당함이 너무 매력적이었어요.”
<BERRYLIN> 연작, 2019.ⓒ베리킴
아름다움은 타인의 허락이 아닌, 스스로를 긍정하는 순간 생긴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조금의 걸림돌도 없이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게 됐고요. 당시의 기억은 작가에게도 인상적으로 남아있습니다.
“완성도가 아주 높은 작업은 아니었는데, 자신도 ‘내면에서 뿜어져 나온다’고 느낄 만큼 본능적인 작업이었어요. 지금도 그때의 작업이 집에 걸려 있는데, 저도 모르게 보고 있으면 애틋하고, 울컥해요.
드로잉에 묻어있는 제 유머와 관점을 자연스럽게, 유쾌하게 받아들였던 레지던시 아티스트들과 관계자들, 관람객들.... 가장 나다웠던 작업과 추억들이 고스란히 느껴지거든요.”
이렇게 사회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과 자아를 그려내던 베리킴의 작업은 더욱 광범위해졌습니다. 이제 작가는 말 그대로 자신을 둘러싼 세계에서 영감을 찾아내고 있는데요. 특히 가장 큰 영감의 원천은 패션입니다. 베리킴 작가는 “패션과 나, 그리고 나의 작업은 항상 연결되어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에게 패션은 커뮤니케이션의 수단이기도 합니다. “저는 표현하는 걸 좋아해요. 사람들을 웃기고 행복하게 하는 것도 좋아하고요. 패션은 이 모든 걸 효율적으로 표현해줘요. 단시간 내에 불특정 다수에게 시각적으로 저를 표현할 수 있잖아요. 제가 작가로서 성장할수록, 패션은 저에게 더욱 중요해질 것 같아요.”
ⓒ베리킴 작가
나가며 :
각자의 ‘베리랜드’를
세우는 방법
베리킴 작가는 진정한 행복이 SNS 세상 속 누군가에게 보여지는 모습에 있다고 믿지 않습니다. 행복은 오히려 -나만 알지라도- 자신의 고유한 매력과 개성이 가진 가치를 깨닫는 데서 온다고 말하죠.
자신을 오랜 시간 ‘미운 오리’처럼 여겨왔다는 작가는 작업을 통해 본연의 자아와 정체성을 찾아 나가는 여정에 관람객을 초대합니다.
“ ’자아 찾기’의 작업이 완성됐다고 말할 순 없을 것 같아요. 아마도 (완성되는 건) 죽기 직전이 아닐까요. 그때까지 저는 나를 연구할 거거든요.
사실 나의 모습을 찾고 표현하는 건 정말 외롭고 고독한 과정이에요. 그래도 낯선 세상에 혼자 부딪혀 보세요. 누구에게도 의존하지 않고, 오롯이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보세요. 그 과정을 겪어내면, 그만큼 깊어져 세상의 어떤 소리에도 흔들리지 않는 자아가 생길 거예요.”
ARTTAG 변혜령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