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미술 #유화 #풍경화 #희망 #마띠에르 #블루 

#contemporary art #oil painting  #landscape #hope #matiere #blue

 


LANDSCAPE

OF HOPE


By reconstructing the memories of living in nature through oil painting, I hope that everyone will live with hope through a message of hope. 




"자연 속에 살아왔던 기억을 오일페인팅으로 재구성하여 희망의 메세지로 모두가 희망을 가득 담고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


ⓒ작업 중인 김경이 작가

야트막한 뒷동산을 달음박질쳐 올라가면, 붉은색 지붕의 집들이 퍼즐처럼 모여있고 그 가운데로 강이 힘차게 흐르고 있습니다.


 키 큰 나무들은 바람에 흔들리며 반갑게 인사하는 듯하고, 멀리 보이는 바다 위로 푸른 하늘은 눈부시게 빛납니다.


 아름다운 희망의 풍경을 그리는 김경이 작가를 만났습니다.

Chapter 1.
어린 시절의 정경


ⓒ김경이

김경이 작가는 어린 시절 자연과 함께했던 기억을 꺼내어 희망을 표현하는 작가입니다. 그의 고향은 포항에서도 1시간이 너끈히 걸리는 외진 시골 마을.

 

뒷동산에 올라서면 마을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오고, 마을을 안고 있는 너른 바다가 펼쳐지는 곳이었습니다. 잔디에 머리를 대고 누워 있노라면 푸른 하늘이 손에 닿을 듯 가깝게 보였죠.

 

그를 둘러싼 자연은 모두 작가의 친구였습니다. 노란 달의 조용한 미소는 위로였고, 바람이 불 때마다 흔들거리는 미루나무는 속 얘기를 모두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였습니다. 동산 위의 소나무는 산을 오를 때마다 두 팔 벌려 응원의 메시지를 전하는 듯했고요.

 

“집 옆의 큰 미루나무가 흔들거리고 있을 때마다 “미루나무야, 내 꿈은 화가야. 네가 하늘에 말하고 있어.” 하고는 학교에 가곤 했어요. 학교에 갔다 와서는 “미루나무야, 너 하늘에 말했니?” 했고요. (웃음)”

 

아버지와 함께 나무를 베러 산에 가면 나무들 사이로 햇빛이 비치던 기억, 뒤에서 수레를 밀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항상 교회 종이 울리던 기억과 딴짓을 할 때면 ‘밀어!’ 소리치던 아버지의 뒷모습, 직접 옷을 지어 수를 놓아주시던 어머니의 모습. 부유하지는 않았지만, 곳곳에 자연과 사랑, 평화가 산재했던 추억들은 작가 생활의 양분이 됐습니다.


작가의 작업실에서. 집보다 훨씬 큰 동백나무 두 그루가 그려진 그림에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담겼다.

커다란 동백나무 두 그루가 그려진 이 그림은 세상을 떠나신 어머니를 떠올리며 그린 그림입니다. 어머니는 여행에서 기념품이 아니라 나무를 사 오시는 분이었습니다.

 

“저희집에 동백나무가 있었어요. 한번은 제가 초등학생일 때 엄마가 제주도에 동네 사람들과 여행을 갔는데, 다른 사람들이 다 기념품을 사 올 때 엄마는 동백나무를 사 오신 거예요. 30cm 묘목 두 그루를요."

 

그때 저는 “놀러 갔으면 맛있는 거 먹고 놀고 와야지 이런 나무 같은 걸 왜 사 왔냐”고 엄마를 구박했어요. 그때 엄마가 “이게 꽃이 피면 얼마나 예쁜지 모른다”면서 마당에 두 그루를 심으셨는데, 아직도 그 동백나무가 저희 시골집에 하얗게 피어 있거든요.

 

"엄마는 집 마당에 채소가 아니라 꽃을 심는 분이셨어요. 계절마다 다른 꽃들이 피도록 여러 가지 꽃을 심으셨죠. 평상에서 저녁을 먹을 때면 꽃향기가 항상 나던 게 생각이 나요. 제 그림에서 순수함이나 동심 같은 게 느껴진다면 아마 어머니의 영향이지 않나 생각이 들어요.”


ⓒ작업 중인 김경이 작가

어린 작가는 ‘화가’라는 단어를 알기 전부터 화가를 꿈꿔왔습니다. 비가 오고 개인 후엔 마당을 도화지 삼아 나무 막대기로 동네의 풍경을 그리는 아이였죠.

 

“학교에 들어가니까 하고 싶은 직업을 쓰라는데 선생님께 매일매일 그림만 그렸으면 좋겠다고 하니까 선생님이 “그건 바로 화가”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때부터 노트며 가방이며 신발에 이름 대신 ‘화가’라고 써놓고 친구들에게도 “내 이름 부르지 말고 화가라고 불러” 강력하게 주장했죠. (웃음)”

 

그러나 오지 마을에서 화가는 “우리가 생각할 수 없을 만큼 큰 단어였고 갈 수 없는 길처럼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아버지께 화가가 될 거라고 했더니 “화가는 부자들만 하는 거지 우리처럼 농사짓는 집은 화가가 될 수 없다”고 하셨죠. 그날 밤에 ‘그래도 나는 화가가 될 거야’ 다짐하면서 잠이 들었던 기억이 나요.”

 

화가는 생각만 해도 가슴이 두근거리는 꿈이었지만 화가가 되는 길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미술을 공부하고 작가가 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30년이 지나 이제 중견 화가가 된 지금, 환경이 허락되지 않았음에도 결국 꿈을 이룰 수 있었던 건 “절대 희망을 버리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작가는 말합니다.

 

“희망이 있는 사람은 비 오는 광야에 서 있을지라도 이 비가 그치면 무지개가 뜰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에요. 꾸준히 걸어가는 사람이고요. 걸어가지도 않으면서 ‘나는 희망이 있어’ 말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저도 살면서 어려움을 겪을 때, 희망이 꺾일 것 같을 때도 ‘이겨 낼 거야’ ‘다시 그림을 그릴 수 있을 거야’를 자신에게 속삭였죠. 제가 항상 희망을 품었던 것처럼, 사람들에게도 언제나 희망은 있다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어요.”


김경이, 꿈너머 꿈 Oil on canvas 91x116.8cm 2022

  • Oil on canvas


  • Oil on canvas
Chapter 2.
희망의 풍경을 그리다


김경이 작가는 어린 시절의 풍경을 재료 삼아 희망을 그리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사랑’이라는 단어를 듣고 어머니를 떠올리고, 누군가는 ‘용기’라는 말을 듣고 어린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듯, 작가에게 ‘희망’은 뒷동산에 올라 바라보았던 고향의 풍경인 셈입니다.

 

이 풍경을 완성하기 위해 어릴 적 기억을 뒤적거리기도 하지만, 살았던 마을로 여행을 떠나 스케치를 해오기도 합니다. 작업실로 돌아오면 현장에서 했던 스케치를 30장에서 50장 정도 이렇게 저렇게 다시 그려보는데요. 마음에 드는 구도와 풍경이 나온 후에야 캔버스에 밑그림을 옮겨 채색을 시작합니다.

 

“(스케치할 때) 특별한 규칙은 없어요. 대신 똑같은 소재와 똑같은 구도는 좋아하지 않는 편이고요. 예를 들어 지평선은 우리 눈에 직선으로 보이지만 제 그림에서는 마을을 감싸는 것처럼, 우리와 함께하는 것처럼 둥글게 그렸죠. 일단 스케치를 많이 해야 돼요. (웃음)”

 

특별한 규칙은 없지만, 늘 그림 곳곳에 희망을 상징하는 소재들을 그려 넣는데요.

 

특히 작가가 주로 사용하는 블루 계열의 색들은 어린 시절 동산에 누워 파란 하늘을 보던 기억과도 연관되어 있는데요. 파란 하늘을 쳐다보며 화가의 꿈을 스스로 되뇌었다는 작가에게 ‘블루’는 희망의 색으로 다가옵니다.

 

김경이, 희망의 봄바람 Oil on canvas 60.6x90.9cm 2023

작가의 특징 중 하나인 마띠에르를 위해서는 물감을 칠하고 말리기를 수십에서 수백 번은 반복해야 합니다. 보통 한 작품을 완성하는 데 8개월이 걸립니다. 누군가의 눈에는 ‘효율’과는 거리가 먼 작업이죠.

 

“주위에서도 왜 유화를 고집하느냐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그런데 제 그림엔 선이 많거든요. 선 하나하나 그을 때마다 내 인생의 어떤 살아온 길, 앞으로 내가 가야 할 길을 선으로 그리는 것 같아요.

 

선을 그리면서 내 마음을 비우는 것 같기도 하고, 빗물 같기도 하고, 내 눈물 같기도 하고, 내가 살아가는 길 같기도 하고…. 저는 그 시간이 너무 좋아요. 그 선 하나로 나의 가는 길을 채우는 거야.”

 

캔버스에는 작가가 군데군데 숨겨놓은 희망의 상징들이 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말없이 미루나무와 달님, 벤치는 어린 시절부터 작가에게 위로와 희망을 주었던 존재입니다.

 

“환경이 허락하지 않을 때도 꾸준히 작업을 해 왔지만 한번 위기가 크게 온 적이 있어요. 미술 도구를 모두 이삿짐센터에 맡겨 놓고, 재료가 없으니 작업을 할 수 없잖아요.

 

매일 벤치에 앉아서 달에게 얼른 맡겨놓은 미술 도구들을 가지고 올 수 있게 도와달라고 속삭이곤  했어요. 그때는 내가 이 세상에서 제일 슬프고 외로운 사람같이 느껴지곤 했지만, 달이 있는 날은 마음이 너무 편안한 거예요.


또 산 위에 올라갈 때마다 소나무가 “여기까지 오느라 정말 수고했어” 말하는 것 같았고요. 스스로 “그래, 내가 여기까지 왔지. 나 정말 잘했어. 또 올라가 보자. 또 열심히 해보자” 다독거리면서 또 왔어요."

 

소담한 옛날 집 앞에 널려있는 빨래에도 희망의 메시지가 담겨있는데요. ‘내일이 있는 사람만이 빨래를 한다’는 작가의 설명을 들으니 과연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김경이 작가의 그림에는 유화 특유의 마띠에르가 두드러진다

Chapter 3.
삶에서 희망을 나누다


김경이 작가는 희망을 그리는 것을 넘어 직접 삶 속에서 희망을 나누고 있습니다. 정기적으로 인도네시아 자바섬에 미술 재료를 보내고, 18년째 장애아이들을 대상으로 미술을 가르쳐 왔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연 전시도 벌써 8회를 맞았고요.

(사진=아이들과 함께 한 전시, 혹은 활동 사진)

 

“성동원 아이들과 만나며 미술 활동을 종종 하곤 했는데, 거기에 그림 잘 그리는 아이들이 있는 거예요. 너무 잘 그려요. 그래서 아이들을 가르치기 시작했죠. 그러다가 인사동을 다니는데 문득 ‘그 아이들 전시를 하나 해줘야겠다’ 생각이 들어 문득 계약을 해버렸죠. 하고 나니까 걱정이 되는 거야. (웃음) 그런데 주변에서 많이 도와주시고 해서 어느새 전시가 벌써 8회 째예요. 아이들이 갤러리에 들어오는 순간 너무 놀라는 거예요. 자기 가슴을 치면서 가슴이 이렇게 뛴대요. 너무 행복해하고요. ‘전시의 힘이 이런 거구나’ 하고 기회가 생길 때마다 전시를 열게 됐죠.

 

성동원에 갈 때 한 시간씩 걸려 가요. 하루를 통으로 비워야 하니 가끔씩 힘들다는 생각이 안 든다고도 할 수 없어요. 하지만 가면 아이들이 담벼락 옆에 쪼르륵 붙어 얼굴을 내밀고 있어요. 수업도 얼마나 열심히 하는지 몰라요. 이제 쉬라고 해도 화장실도 안 가고 칠하죠. 제가 주는 것에 비해 너무 많은 기쁨을 받아요.”


ⓒ작업 중인 김경이 작가

뒷동산에 누워 파란 하늘을 보던 소녀는 이룰 수 없을 것 같았던 화가라는 꿈을 이뤘습니다. 이제 작가는 다른 사람에게 희망을 전하는 일을 꿈꿉니다.

 

“능력이 있는데 도움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을 도울 수 있는 공간이 생겼으면 좋겠어요. 그것이 저의 새로운 희망이에요.”



#현대미술 #유화 #풍경화 #희망 #마띠에르 #블루 

#contemporary art #oil painting  #landscape #hope #matiere #blue


LANDSCAPE OF HOPE


As you run up the low hill, you will see houses with red roofs gathered together like a puzzle, and a river flowing powerfully through them. Tall trees sway in the wind and seem to greet you warmly, and the blue sky shines dazzlingly over the distant sea. We met artist Kim Kyung-i, who paints beautiful landscapes of hope.


야트막한 뒷동산을 달음박질쳐 올라가면, 붉은색 지붕의 집들이 퍼즐처럼 모여있고 그 가운데로 강이 힘차게 흐르고 있습니다.

 키 큰 나무들은 바람에 흔들리며 반갑게 인사하는 듯하고, 멀리 보이는 바다 위로 푸른 하늘은 눈부시게 빛납니다.


 아름다운 희망의 풍경을 그리는 김경이 작가를 만났습니다.

ⓒ김경이

작가의 작업실에서. 집보다 훨씬 큰 동백나무 두 그루가 그려진 그림에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담겼다.

Chapter 1.
어린 시절의 정경


김경이 작가는 어린 시절 자연과 함께했던 기억을 꺼내어 희망을 표현하는 작가입니다. 그의 고향은 포항에서도 1시간이 너끈히 걸리는 외진 시골 마을.

 

뒷동산에 올라서면 마을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오고, 마을을 안고 있는 너른 바다가 펼쳐지는 곳이었습니다. 잔디에 머리를 대고 누워 있노라면 푸른 하늘이 손에 닿을 듯 가깝게 보였죠.

 

그를 둘러싼 자연은 모두 작가의 친구였습니다. 노란 달의 조용한 미소는 위로였고, 바람이 불 때마다 흔들거리는 미루나무는 속 얘기를 모두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였습니다. 동산 위의 소나무는 산을 오를 때마다 두 팔 벌려 응원의 메시지를 전하는 듯했고요.

 

“집 옆의 큰 미루나무가 흔들거리고 있을 때마다 “미루나무야, 내 꿈은 화가야. 네가 하늘에 말하고 있어.” 하고는 학교에 가곤 했어요. 학교에 갔다 와서는 “미루나무야, 너 하늘에 말했니?” 했고요. (웃음)”

 

아버지와 함께 나무를 베러 산에 가면 나무들 사이로 햇빛이 비치던 기억, 뒤에서 수레를 밀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항상 교회 종이 울리던 기억과 딴짓을 할 때면 ‘밀어!’ 소리치던 아버지의 뒷모습, 직접 옷을 지어 수를 놓아주시던 어머니의 모습. 부유하지는 않았지만, 곳곳에 자연과 사랑, 평화가 산재했던 추억들은 작가 생활의 양분이 됐습니다.


커다란 동백나무 두 그루가 그려진 이 그림은 세상을 떠나신 어머니를 떠올리며 그린 그림입니다. 어머니는 여행에서 기념품이 아니라 나무를 사 오시는 분이었습니다.

 

“저희집에 동백나무가 있었어요. 한번은 제가 초등학생일 때 엄마가 제주도에 동네 사람들과 여행을 갔는데, 다른 사람들이 다 기념품을 사 올 때 엄마는 동백나무를 사 오신 거예요. 30cm 묘목 두 그루를요.

 

그때 저는 “놀러 갔으면 맛있는 거 먹고 놀고 와야지 이런 나무 같은 걸 왜 사 왔냐”고 엄마를 구박했어요. 그때 엄마가 “이게 꽃이 피면 얼마나 예쁜지 모른다”면서 마당에 두 그루를 심으셨는데, 아직도 그 동백나무가 저희 시골집에 하얗게 피어 있거든요.

 

엄마는 집 마당에 채소가 아니라 꽃을 심는 분이셨어요. 계절마다 다른 꽃들이 피도록 여러 가지 꽃을 심으셨죠. 평상에서 저녁을 먹을 때면 꽃향기가 항상 나던 게 생각이 나요. 제 그림에서 순수함이나 동심 같은 게 느껴진다면 아마 어머니의 영향이지 않나 생각이 들어요.”

 ⓒ 작업 중인 김경이 작가.

김경이, 꿈너머 꿈 Oil on canvas 91x116.8cm 2022

  • Oil on canvas


  • Oil on canvas

어린 작가는 ‘화가’라는 단어를 알기 전부터 화가를 꿈꿔왔습니다. 비가 오고 개인 후엔 마당을 도화지 삼아 나무 막대기로 동네의 풍경을 그리는 아이였죠.

 

“학교에 들어가니까 하고 싶은 직업을 쓰라는데 선생님께 매일매일 그림만 그렸으면 좋겠다고 하니까 선생님이 “그건 바로 화가”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때부터 노트며 가방이며 신발에 이름 대신 ‘화가’라고 써놓고 친구들에게도 “내 이름 부르지 말고 화가라고 불러” 강력하게 주장했죠. (웃음)”

 

그러나 오지 마을에서 화가는 “우리가 생각할 수 없을 만큼 큰 단어였고 갈 수 없는 길처럼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아버지께 화가가 될 거라고 했더니 “화가는 부자들만 하는 거지 우리처럼 농사짓는 집은 화가가 될 수 없다”고 하셨죠. 그날 밤에 ‘그래도 나는 화가가 될 거야’ 다짐하면서 잠이 들었던 기억이 나요.”

 

화가는 생각만 해도 가슴이 두근거리는 꿈이었지만 화가가 되는 길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미술을 공부하고 작가가 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30년이 지나 이제 중견 화가가 된 지금, 환경이 허락되지 않았음에도 결국 꿈을 이룰 수 있었던 건 “절대 희망을 버리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작가는 말합니다.

 

“희망이 있는 사람은 비 오는 광야에 서 있을지라도 이 비가 그치면 무지개가 뜰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에요. 꾸준히 걸어가는 사람이고요. 걸어가지도 않으면서 ‘나는 희망이 있어’ 말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저도 살면서 어려움을 겪을 때, 희망이 꺾일 것 같을 때도 ‘이겨 낼 거야’ ‘다시 그림을 그릴 수 있을 거야’를 자신에게 속삭였죠. 제가 항상 희망을 품었던 것처럼, 사람들에게도 언제나 희망은 있다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어요.”

ⓒ작업 중인 김경이 작가

김경이, 희망 Oil on canvas 53x45.5cm

김경이, 희망의 봄바람 Oil on canvas 60.6x90.9cm 2023

Chapter 2.
희망의 풍경을 그리다


김경이 작가는 어린 시절의 풍경을 재료 삼아 희망을 그리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사랑’이라는 단어를 듣고 어머니를 떠올리고, 누군가는 ‘용기’라는 말을 듣고 어린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듯, 작가에게 ‘희망’은 뒷동산에 올라 바라보았던 고향의 풍경인 셈입니다.

 

이 풍경을 완성하기 위해 어릴 적 기억을 뒤적거리기도 하지만, 살았던 마을로 여행을 떠나 스케치를 해오기도 합니다. 작업실로 돌아오면 현장에서 했던 스케치를 30장에서 50장 정도 이렇게 저렇게 다시 그려보는데요. 마음에 드는 구도와 풍경이 나온 후에야 캔버스에 밑그림을 옮겨 채색을 시작합니다.

 

“(스케치할 때) 특별한 규칙은 없어요. 대신 똑같은 소재와 똑같은 구도는 좋아하지 않는 편이고요. 예를 들어 지평선은 우리 눈에 직선으로 보이지만 제 그림에서는 마을을 감싸는 것처럼, 우리와 함께하는 것처럼 둥글게 그렸죠. 일단 스케치를 많이 해야 돼요. (웃음)”

 

특별한 규칙은 없지만, 늘 그림 곳곳에 희망을 상징하는 소재들을 그려 넣는데요.

 

특히 작가가 주로 사용하는 블루 계열의 색들은 어린 시절 동산에 누워 파란 하늘을 보던 기억과도 연관되어 있는데요. 파란 하늘을 쳐다보며 화가의 꿈을 스스로 되뇌었다는 작가에게 ‘블루’는 희망의 색으로 다가옵니다.

 

작가의 특징 중 하나인 마띠에르를 위해서는 물감을 칠하고 말리기를 수십에서 수백 번은 반복해야 합니다. 보통 한 작품을 완성하는 데 8개월이 걸립니다. 누군가의 눈에는 ‘효율’과는 거리가 먼 작업이죠.

 

“주위에서도 왜 유화를 고집하느냐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그런데 제 그림엔 선이 많거든요. 선 하나하나 그을 때마다 내 인생의 어떤 살아온 길, 앞으로 내가 가야 할 길을 선으로 그리는 것 같아요.

 

선을 그리면서 내 마음을 비우는 것 같기도 하고, 빗물 같기도 하고, 내 눈물 같기도 하고, 내가 살아가는 길 같기도 하고…. 저는 그 시간이 너무 좋아요. 그 선 하나로 나의 가는 길을 채우는 거야.”

 

캔버스에는 작가가 군데군데 숨겨놓은 희망의 상징들이 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말없이 미루나무와 달님, 벤치는 어린 시절부터 작가에게 위로와 희망을 주었던 존재입니다.

 

“환경이 허락하지 않을 때도 꾸준히 작업을 해 왔지만 한번 위기가 크게 온 적이 있어요. 미술 도구를 모두 이삿짐센터에 맡겨 놓고, 재료가 없으니 작업을 할 수 없잖아요.

 

매일 벤치에 앉아서 달에게 얼른 맡겨놓은 미술 도구들을 가지고 올 수 있게 도와달라고 속삭이곤  했어요. 그때는 내가 이 세상에서 제일 슬프고 외로운 사람같이 느껴지곤 했지만, 달이 있는 날은 마음이 너무 편안한 거예요.

 

또 산 위에 올라갈 때마다 소나무가 “여기까지 오느라 정말 수고했어” 말하는 것 같았고요. 스스로 “그래, 내가 여기까지 왔지. 나 정말 잘했어. 또 올라가 보자. 또 열심히 해보자” 다독거리면서 또 왔어요.

 

소담한 옛날 집 앞에 널려있는 빨래에도 희망의 메시지가 담겨있는데요. ‘내일이 있는 사람만이 빨래를 한다’는 작가의 설명을 들으니 과연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김경이 작가의 그림에는 유화 특유의 마띠에르가 두드러진다

Chapter 3.
삶에서 희망을 나누다


김경이 작가는 희망을 그리는 것을 넘어 직접 삶 속에서 희망을 나누고 있습니다. 정기적으로 인도네시아 자바섬에 미술 재료를 보내고, 18년째 장애아이들을 대상으로 미술을 가르쳐 왔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연 전시도 벌써 8회를 맞았고요.

(사진=아이들과 함께 한 전시, 혹은 활동 사진)

 

“성동원 아이들과 만나며 미술 활동을 종종 하곤 했는데, 거기에 그림 잘 그리는 아이들이 있는 거예요. 너무 잘 그려요. 그래서 아이들을 가르치기 시작했죠. 그러다가 인사동을 다니는데 문득 ‘그 아이들 전시를 하나 해줘야겠다’ 생각이 들어 문득 계약을 해버렸죠. 하고 나니까 걱정이 되는 거야. (웃음) 그런데 주변에서 많이 도와주시고 해서 어느새 전시가 벌써 8회 째예요. 아이들이 갤러리에 들어오는 순간 너무 놀라는 거예요. 자기 가슴을 치면서 가슴이 이렇게 뛴대요. 너무 행복해하고요. ‘전시의 힘이 이런 거구나’ 하고 기회가 생길 때마다 전시를 열게 됐죠.

 

성동원에 갈 때 한 시간씩 걸려 가요. 하루를 통으로 비워야 하니 가끔씩 힘들다는 생각이 안 든다고도 할 수 없어요. 하지만 가면 아이들이 담벼락 옆에 쪼르륵 붙어 얼굴을 내밀고 있어요. 수업도 얼마나 열심히 하는지 몰라요. 이제 쉬라고 해도 화장실도 안 가고 칠하죠. 제가 주는 것에 비해 너무 많은 기쁨을 받아요.”

ⓒ작업 중인 김경이 작가.

뒷동산에 누워 파란 하늘을 보던 소녀는 이룰 수 없을 것 같았던 화가라는 꿈을 이뤘습니다. 

이제 작가는 다른 사람에게 희망을 전하는 일을 꿈꿉니다.

 

“능력이 있는데 도움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을 도울 수 있는 공간이 생겼으면 좋겠어요.

 그것이 저의 새로운 희망이에요.”